이천출신 무장항일 이수흥 의사 제80주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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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출신 무장항일 이수흥 의사 제80주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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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2.2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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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무장항일투쟁의 선봉에 나서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사형당한 이수흥 의사에 대한 「제80주기 추모제 행사」가 3.1절을 앞둔 27일 오전10시 이천초등학교 앞 이수흥동상 소공원에서 개최됐다.

국제와이즈멘이천클럽(회장 권용만)이 주관하고 연안이씨 종친회가 후원한 이날 추모행사에는 조병돈 시장을 비롯해 이현회 시의회의장, 이명자 교육장, 연안이씨종친회,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해 헌화·분향하고 추모사를 낭독하는 등 경건하고 엄숙하게 진행됐다.

조병돈 시장은 추모사에서 “이천이 낳은 독립운동가로 조국독립을 위해 몸 바쳐 헌신하시다 끝내 이를 지켜보지 못하고 약관의 연세로 순국하신 님을 20만 이천시민과 함께 경건한 마음으로 추도한다”며 “애국선열의 한없는 나라 사랑의 정신과 숭고한 뜻을 우리 후대에서 발전시키고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흥(李壽興) 의사는 본관 연안(延安)으로 일제에 의해 주권을 침탈당한 1905년 경기도 이천 창전동에서 태어났으며 18세 되던 해부터 무장독립운동에 뛰어 들어 1929년 2월 24세 약관의 나이로 안타깝게 짧은 생을 마감했다.

소년시절에 입산하여 3년간 승려생활을 하다가 환속하고, 1923년 만주로 들어가 지린성에 있는 신명학교를 졸업한 그는 그해 7월 대한통의부에 가담하여 활약하다가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 산하 육군 주만참의부가 조직되자 이에 가담하여 무장항일투쟁에 참여했다.

1926년 총독과 고관암살 및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국내로 잠입, 6.10만세사건 당시 서울 동소문파출소, 이천경찰서, 현방주재소, 안성의 갑부 박승육의 집을 습격하는 등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으며 부친의 부음을 듣고 수원에 가서 장례를 치르고 이천에 들렀다 체포되어 1929년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했다.

사후 33년이 지난 1962년 정부는 독립운동 유공자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여 의사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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