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대로 인한 절망을 이겨나가는 ‘장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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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로 인한 절망을 이겨나가는 ‘장동리’
  • 양동민 기자
  • 승인 2008.09.0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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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적산 아래 첫 동네로 자연경관 뛰어나 훌륭한 인물 배출
과거에 장이 선 마을, 이천의 관문으로 이천을 상징하는 마을
도암 삼거리에서 백사 산수유꽃축제장으로 향해 500여m를 지나, ‘학사교’라는 다리를 건너서 좌측으로 원적산을 보고 2㎞를 들어가면 동네어귀에 다다른다. 500년 이상은 돼 보이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와 마을 회관, 그리고 원적산 계곡을 따라 흐르는 소하천. 누구나가 말하는 아름다운 전원마을의 풍경을 간직했다. 장동1리 오원영 이장은 “이천에서 몇 안 되는 살기 좋은 마을로, 내에서는 가재가 잡히는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라며 마을사람들이 정신과 몸이 건강해서 모두가 부지런하단다.

그래서인지 집들도 대개가 신증축을 해 깨끗하다. 80여 세대 중 30%가 인삼농사에 종사하고 있어 수익도 넉넉한 듯 보인다.오 이장은 자연의 여건보다 특히 원적산의 정기를 받아 훌륭한 인물도 많이 배출됐다고 자랑이다. 최근 인물로는 황규선 국회의원이 그렇고, 과거 조선시대에는 괴정육현의 인물로 오경이 이 마을 출신이다. 과거 장동리가 해주 오씨의 집성촌임을 짐작할 수 있다.이런 자연의 아름다움과 전통을 이어온 장동리가 지난해 절망과 분노로 들끓었던 것을 이천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 국방부의 일방적인 특전사 이전 지역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정말로 끔찍스런 일이었습니다. 살기 좋고 평화로운 마을에 군부대가 들어온다며 고향을 떠나라는 것은 죽음과도 같았습니다.”당시를 생각하면 오 이장도 반대투쟁에 앞장 서 준 이천 시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마장면 관리 주민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며 측은지심을 보인다.그도 그럴 것이 현재 장동리 마을 위에는 1985년도에 들어온 예비군 훈련장과 유격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 노인회장인 김종철 옹도 1985년 당시 이장직을 보고 있었다.

“그때는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면 반대를 하지 못했어, 지금이나마 보상요구하며 반대한다고들 난리지, 그때는 전혀 반대할 수 없었지. 지금 마을 위에 훈련장과 유격장만 없었어도 최고의 동네였지”김 회장의 푸념 섞인 말에서 조금이나마 마을의 피해의식을 짐작할 수 있다. 이장과 노인회장이 이렇게 군부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앞으로가 또 걱정이 돼서다.

“최근에 부발읍 무촌리 효양산의 군부대가 이리로 들어온다는 거야. 지난해 같은 경우야 이천시와 시민이 함께 반대해 막았지만, 이제는 어떻게 막을지 걱정이야.”기구한 운명을 지닌 동네다. 군부대와 무슨 원수졌다고 모두들 이 마을을 택하니 말이다. 원적산이 전략적으로 군사 요충지임에는 틀림없는 듯싶다.

김 회장은 과거에는 장동리가 이천의 관문으로 광주시와 물물교환 등 시장이 성행했다고 한다. 마을 위에는 장이 선 장소에 축대가 아직도 있으며, ‘장재골’이라는 고개와 골짜기 명칭이 남아있다. 장동리도 장이 선 동네라는 데서 유래됐다.어찌보면 장동리의 과거와 미래를 보면서 이천시를 연상케 된다. 과거 교통의 요충지로 장이 성행했다니 경제의 흐름이 활발했으며,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며 살아갔으니 이만한 행복한 삶의 터가 어디 있겠는가. 한데 이런 마을이 군부대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터전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조속한 대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와 미래를 간직한 이천을 상징하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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