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는 세상, “사과받고 고향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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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없는 세상, “사과받고 고향서 살고 싶다”
  • 양동민 기자
  • 승인 2008.07.10 14: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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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동안 진행된 법정싸움으로 남은 건 ‘우울증’뿐
마을회관 신축공사장서 사고로 사망, 대책은 미비

1년 전 직접 운영하던 식당에서 주방 일을 보다 허리를 다친 한연숙(47, 송정동) 씨는 앞날이 캄캄하다. 거동이 힘들어 식당도 접고 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에 전세금을 못 올려줘 당장 다른 집을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한 씨는 지난 3년간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모른다. 여주에서 노래방도 운영하고 마지막으로 이천 시내에서 식당운영도 했지만 법원과 변호사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이제 남은 것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몸과 우울증이 전부다.

“솔직히 힘들다. 남편이 죽은 뒤 보다 나은 내일을 생각하며 세 딸을 위해서라도 하루 24시간을 열심히 살아왔다. 어느 땐 세 딸과 밤새도록 울기도 했다. 그 사람은 우리 가족의 전부였어. 그래, 나도 데려가! 이젠 그만 살고 싶다구!”펑펑 우는 그녀는 3년 전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남편의 죽음만 아니었어도 세상에서 가장 풍요롭고 행복한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2005년 5월 20일 장호원읍 진암리 동산아파트에 살던 남편 유씨(당시 47세)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새벽부터 공사현장으로 출근을 했다. 당시 공사 중이던 진암리 마을회관 신축공사는 어지간히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사는 동네이면서 장호원에서 ‘쌍둥이 엄마’로 통하는 안사람(한연숙 씨)이 마을의 새마을 부녀회장 직을 맡고 있어 마을주민들의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현장이 집 앞이다 보니 쌍둥이 엄마도 아침에 커피, 점심 식사, 오후엔 간식을 나르며 남편의 일손을 도왔었다. 또 올해에 나란히 대학교에 들어간 두 딸(쌍둥이)과 첫 딸(혜진)을 보면 힘든 것도 없이 뿌듯하기만 했단다. 이렇게 행복한 가정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은 이날 오후 5시 40분경 유씨가 현장에서 떨어져 뇌출혈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10일이 지난 후 사망했다.

한 씨와 세 딸에 따르면 사고 이후 집으로 연락이 온 것은 4시간이 지나서였다. 위급한 상황에서 유씨가 제대로 응급처치 및 수술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문제는 공사 현장의 전체적인 상황이다. 무면허 건설업체가 공사를 시행한 것과 읍사무소와 업자간의 계약에 따른 착공 승인이 난 후 공사가 진행됐어야 함에도 계약도 없이 공사가 먼저 진행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업자와 읍사무소는 사태 수습에 미흡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는 한씨가 2년여의 걸친 법정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일단락됐다. 보상금 한 푼 못 받고, 빚만 떠안게 된 것이다.이런 한씨를 더욱 괴롭힌 것은 주위의 시선과 말들이었다. “보상금 받고 재혼해 잘 산다”, “젊은 녀석이랑 시내를 활보하고 다닌다”, 또 어떤 이는 같이 있던 조카를 보며 “새신랑이 젊고 든든하네”라며 있을 수 없는 말들을 들을 때면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었다고 한다.

그래도 한 씨를 지켜준 것은 세 딸이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아버지를 여윈 세 딸은 사고 후 모두 휴학하고 엄마를 옆에서 위로했다. 지금은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는 첫째 혜진(26, 간호조무사)이와 엄마의 든든한 보호자인 유진(23, 계약직)이, 두 언니처럼 직접적인 도움을 못 드리지만 학업을 마치고 큰 도움을 주겠다는 막내 유민(23, 대학생)이를 볼 때면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지난 달 23일 한 씨는 시청을 방문해 시장 면담을 요청했다. 3년을 지내면서 망가진 육체와 정신에 대해 조금이나마 사과 받고자 하는 이유에서다.“남편이 눈을 감지 못하고 죽었다. 주위에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들으면서 이렇게 억척스럽게 살았지만 이젠 힘들다. 나도 이젠 그를 따라가야 할 것 같다. 이천시가 최소한의 도의적 사과라도 받고 싶다. 그래야 하늘에 남편도 편안히 잠들 것이며 주위에 사람들도 자신들의 말에 책임을 질 것이다.”

하지만 시장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장호원읍장이 답변주기로 한 날짜도 지났다. 갑작스런 가장의 죽음으로 낱낱이 발가벗겨진 한 모녀 가정이 더 이상 기댈 곳은 없었다. 한씨가 바라는 것은 주위의 위로 속에서 이천시 아니 장호원에서 편안한 삶을 보내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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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2008-07-10 20:54:07
사람들이란 역시 자기 이익만 생각하네요
유가족들에게 무릎꿇고 빨리 사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