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속 안흥지 주민의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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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 안흥지 주민의 품으로...
  • 이석미 기자
  • 승인 2008.06.05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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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들의 안흥지 정화작업 ‘결실’
친환경 수질정화로 다시 찾은 시민들의 휴식공간
안흥지에 있는 애련정은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세조 12년(1466년) 부사 이세보가 중건, 영의정 신숙주에게 부탁하여 애련정(愛蓮亭)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998년 12월 이천시에서 복원했는데, 단청의 우아함이 돋보이는 애련정은 안흥지 주변경관과 잘 어울리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천9경 중 제7경에 속하는 이천의 문화유적 ‘애련정’. 복원된 지 수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각종 쓰레기와 오염물질로 더럽혀져 점차 시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던 애련정이 최근 이천시와 여러 시민단체들의 정성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지난 3월 8일, 미래도시포럼(회장 이규화) 주관으로 시작된 안흥지 정화작업은 (주)써니엔지택(대표 유정호)이 자체 개발한 MBP(Micro-Bubble Purification)장비를 이용, 불과 한달 여 만에 연못 바닥이 훤히 보이는 등 눈에 띄는 수질정화 성과를 나타내며 주변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6년여의 연구 끝에 호수 정화기술로는 세계적으로 첫 기술개발에 성공한 (주)써니엔지택 박창원 이사는 “미래도시포럼의 회원으로 활동 중 지역을 위한 환경사업의 일환으로 안흥지를 첫 대상지로 선정했다”고 사업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이들의 정화작업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MBP장비를 통해 호스로 전해지는 미세기포가 물속에 있는 오염물질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며, 이때 미세기포와 함께 발생되는 산소가 화학약품 없이 생태계를 되살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어떠한 정화작업보다 친환경적이며 수질정화의 빠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이 MBP장비는 최근 갈수록 심각해지는 수질오염으로 인해 세계 각국에서의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현재 특허출원 중에 있다.

이후 눈에 띄게 달라지는 안흥지를 찾은 시민들은 놀라움과 기쁨 속에 탄성을 지르고, 이에 안흥지를 살리려는 각종 시민단체들의 참여 또한 늘어갔다.맑게 정화된 연못 바닥이 훤히 보이자 이번엔 이천시해병대전우회 회원들, 스킨스쿠버 동호인들이 나서 수차례에 걸친 쓰레기수거작업을 펼친 것. 생업을 뒤로 하고 하루 종일 연못 바닥을 헤엄쳐 다닌 이들의 노고는 이 같은 시민들의 호응에 보다 큰 보람을 느낀다.“예전에는 물빛이 탁하고 더운 여름철이면 악취까지 진동해 불쾌했었는데 이렇게 몰라보게 깨끗해진 물속을 보니 마음까지 맑아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기술이 있다니 안흥지 뿐 아니라 설봉호수도 이렇게 깨끗해졌으면 좋겠어요.”
안흥지를 찾은 시민들의 반응이다. 이밖에도 매년 수차례씩 외국바이어들을 초청한다는 한 무역업자는 “인근 호텔에서 숙박을 하던 바이어들이 이번에 와서는 ‘안흥지의 물이 맑아져 더 아름답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아 어깨가 으쓱했다”면서 “이천시민으로서 외국인들의 이런 반응이 한 건의 계약을 체결한 것보다 더 기뻤다”고 반색을 표했다.

이처럼 맑고 아름다워진 안흥지는 연못 주변에 마련된 운동기구와 깨끗하게 정비된 산책로, 맑은 물에 비친 애련정의 고풍스런 자태를 뽐내며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예전의 사랑을 되찾고 있다. 이에 주변에 세워진 29개의 기념비와 애향비는 이천시민과 함께 해온 애련정의 역사를 잘 말해준다.

한편, 미래도시포럼 회원이자 MBP장비 개발자인 박창원 이사는 “처음 시도하는 수질정화작업으로 안흥지를 택한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흥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무척 큰 것을 느꼈다”면서 “깨끗해진 안흥지를 잘 보존하는 것이 시민들에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라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되살아난 이천의 문화유적 ‘애련정’
이천9경 제7경 안흥지 애련정
‘新增東國與地勝覽’에 수록한 임원준의 <愛蓮亭記>에 의하면 애련정은 성종 5년(1474) 이천 부사로 부임한 이세보(李世珤)가 세웠다고 되어 있다. 처음에 관아 동쪽에 있는 이천 객관 남쪽에 작은 정자가 있었는데, 그가 부임할 당시에는 돌보지 않아서 기울어져 있었다. 이세보는 이 정자를 수리하여 전보다 더 크게 세웠는데, 낮지도 않고 그리 높지도 않으며, 사치스럽지도 않다고 하였다.

정자아래쪽은 자연습지였는데 사각형의 연못(方沼)을 파고 연꽃을 가운데 심었다고 하였다.
영의정이던 신숙주(申淑舟)에게 작명을 부탁하여 애련(愛蓮)이란 이름을 얻었다. 중종 4년(1509)경에 부사 이순언(李純彦)이 애련정을 크게 증축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문집을 살펴보면 김안국(金安國), 월산대군(月山大君), 서거정(徐居正), 그 외 조위(曺偉), 강경서(姜景敍), 김진상(金鎭商) 등이 애련정을 소재로 한 시가 남아있다.

여주 세종대왕 능에 참배하고 돌아가던 길에 역대의 국왕들이 이곳을 방문하였다.
실록에는 중종이 이곳에서 양로연을 베푼 기록이 있고, 숙종과 영조, 정조가 방문한 기록도 있다. 또한 [與地圖書]에 의하면 조선시대의 안흥지(安興池)는 둘레가 1250척(약388m)으로 부(府) 동쪽 5리 지점에 안흥리 제언이 있다고 하였으며, 규모가 크긴 하지만 조금 작은 다른 제언들은 전혀 기록하지 않고 지도마다 안흥지만 표기한 것은 아무래도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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