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고동 장터거리 약초 파는 ‘친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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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고동 장터거리 약초 파는 ‘친절맨’
  • 양동민 기자
  • 승인 2007.12.2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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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 약초업계 입문 ‘전통 이을 것’ 어르신들 사랑방…말동무도 척척 “우리 몸에 딱 알 맞는 생약을 살리자.”“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생약재배를 포기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우리 것을 너무나도 사랑하셨던 아버님께서 저에게 물려주신 소중한 직업이니까요” 대를 이어 오로지 생약재배에만 몰두해온 김종필(34)씨. 이천시 관고동 장터거리에 위치한 10평 남짓한 ‘한국생약협회 이천시지부 생약판매장’. 20년 세월이 흘렀듯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하기 짝이 없어 보이지만 손님들에게는 속이 꽉 찬 알뜰하고 따뜻한 장소로 통한다. 매장에선 코끝을 자극하는 약초냄새가 옛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한 10분만 앉아 있으면 우리의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금새 알게 된다. 질서 있게 진열된 황기와 당귀 그리고 구기자, 오미자 등 우리 몸에 좋은 100여 가지가 넘는 생약들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영하권의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약초가 상할까봐 난방도 하지 않고 있다. “실내온도가 높으면 약초를 포장한 비닐봉지에 습기가 찹니다. 상품가치가 떨어지지요” 김 씨에게 매년 찾아오는 겨울은 곤혹스럽기만 하다. 이윽고 60대로 보이는 한 손님이 들어온다. “어찌된 일인지 요즘 들어 기억력이 자꾸 떨어지는 것 같은데 뭘 사야 돼…” 손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약초를 하나 꺼내들더니 조곤조곤 설명에 나선다. “치매와 기억력 감퇴에는 ‘복신’이 좋아요.” 이 손님과 같이 생약매장을 주로 찾는 고객들은 ‘민간요법’을 익히 잘 알고 있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어지간한 손님은 대부분 10년 이상 된 단골고객이다. 매장을 찾는 어르신들은 꼭 이렇게 한마디씩 한다고 한다. “오래살고 싶어서 왔어.” 김씨는 “(손님들께서)저를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귀여워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때론 물건 구입을 떠나 그냥 ‘마실’오는 손님들도 많다. 말동무가 필요한 어르신들을 김씨는 늘 반긴다고 한다. 그만큼 친한 사이가 됐기 때문. 김씨의 어른공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5일장이 들어서는 날이면 어김없이 노점상 할머니들에게 따뜻한 차 한잔을 대접한다고 한다. 그러기를 벌써 5년째.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장터거리 ‘친절맨’이다. 김씨가 생약재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98년. 공대 출신으로 당시 건설현장에 몸담고 있었던 그에게 느닷없이 변화가 생겼다. “아버지의 대를 잇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생약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었죠. 우리 몸에는 우리 것이 가장 좋다는 신토불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무작정 귀향했다. 아버지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에 그의 진로 결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지난 2002년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친은 한국생약협회 경기도지부장과 중앙회 이사를 역임할 정도로 협회 발전과 생약연구에 일생을 바쳤던 인물이다. 게다가 황기 재배법을 널리 보급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생약발전을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니셨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제가 바로 이 자리에 서있는 이유입니다” 아집일까. 김씨의 다짐 이면에는 비장한 각오가 서려있었다. 젊은이답지 않은 그의 투철한 모습에서 우리의 전통이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사실 약초재배와 판매를 통해 얻어지는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빠듯하기만 하다. 지난날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싶은 욕심 때문에 고민도 많았지만, 농군을 천직으로 알고 약초업계에 뛰어든 김씨. “이 일을 시작한 것에 대해 단 한번도 후회 한 적이 없습니다. 생약 다루는 일이 즐겁거든요. 평생토록 해나갈 생각입니다” 수입농산물이 판을 치는 요즘 우리의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에게서 잊혀져가는 ‘신토불이’의 소중함이 가슴깊이 새겨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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