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주류음악에서 조금 벗어난 부담 없는 래퍼토리를 가지고 컬럼 아닌 컬럼을 써보려 했지만, 그 의도에서 벗어나 난해한 앨범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0.01%에서 0.02% 정도의 독자에게라도 음악에 관한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면 조금 용서가 되겠는지….
아쉽지만 끝으로 두 명의 아티스트를 간략히 소개하고 작별할까 한다. 첫 번째, 만약 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마일스 데이비스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지금까지 정상의 자리에 있었던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보면 매너리즘에 빠져 현재에 안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일스 데이비스는 언제나 새로운 사조가 나타나면 그것을 존중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그는 비밥에서부터 퓨전 재즈에 이르기까지 재즈의 큰 흐름 그 자체였다. 현재 재즈계를 이끌고 있는 상당수의 뮤지션들이 그의 휘하에 있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의 위대함을 짐작 할 수 있다. 항상 새로움의 정점에 있었던 그의 음악은 실로 방대하다. 그 중 뛰어난 테너 색소폰 주자 존 콜트레인과의 협연이 인상적인 「라운드 미드나잇」, 정통파 피아노 주자 빌 에반스와의 협연으로 잘 알려진 「카인드 오브 블루」, 영화 사운드 트랙으로 친숙한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1967년 그래미상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마일스 스마일」등을 권해본다.
두 번째,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이 더 많은 윤명훈. 한영애의 「누구없소」를 만든 사람이라면 아시겠는지! 나는 <빛과 소금>의 장기호 씨의 후임으로 그의 밴드에 합류했었다. 프로 베이스 플레이어로 알려진 계기도 운명훈 씨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그의 밴드는 그 당시 최고의 연주자들이었고, 나와의 연배 차이가 15년 이상 나는 대선배들이었다.
그들과의 첫 합주는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세션이었고, 그만큼 떨렸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그 흥분이 남아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다. 또한 국내 기타 연주계에서 현재 최고라 인정하는 타미 킴도 그 당시 윤명훈 밴드에서 나와 한솥밥을 먹었다. 그의 픽업에 선뜻 응할 만큼 어린 우리들에게 윤명훈은 그 만큼 강렬했던 것이다. 또한 그의 가사를 보면 세상을 관망하는 듯한 그만의 문법이 있다. 「누구없소」외에도 훌륭한 곡들이 많은데 한번 찾아보고 그 의미를 음미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그땐 그 놈의 술이 그렇게 지긋지긋했건만 지금 그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와 함께 술 한 잔 꺾고 싶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와 같은 지독한 독립군이 되어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윤명훈, 다시 한번 일어나길 기원한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저 또한 좋은 음악으로 친근한 이천시민과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