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악 이야기<5> 클라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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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음악 이야기<5> 클라투
  • 이천저널
  • 승인 2007.03.0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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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같은, 휴식 같은, 피터 팬 같은

학창 시절 음악을 꽤나 예민하게 듣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 덕에 귀한 LP판을 여러 번 빌려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들었던 음악을 떠오르는 대로 꼽으라면 블랙 사바스와 유투의 초창기 앨범과 핑크플로이드의 1975년 작품 등이다. 그때 그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연주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나보다 오히려 더 다양한 레코드를 갖고, 더 깊이 있는 감상을 하는 친구들에 대해 조금 자존심이 상했던 기억도 있다.

어지간한 밴드의 명성이나 음악 세계에 대해서는 나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캐나다 3인조 그룹인 클라투(klaatu)는 처음 듣는 낯선 이름이었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턴테이블 위에 올려 봤는데 귀에 너무도 잘 감겨 들어오는 것이 기대 이상으로 신선했다.

흔히 클라투는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로 알려져 있지만, 그때 나는 이지 리스닝 계열의 밴드로 느껴졌다. 전체적인 사운드는 아름답다는 표현보다 참 예쁜 음악이란 느낌이 강했다. 원래 유능한 스튜디오 뮤지션들이어서 그런지 연주와 소리의 질감이 수준 이상이었다.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비틀즈 풍의 느낌이 너무 강하다는 점인데 어차피 그런 좋은 연주가 가능하다면 좀 더 실험적인 그들 만에 세계로 깊이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기도 했다.

클라투의 앨범 중에는 1976년에 발표한 그들의 데뷔 앨범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또 재미있는 곡들도 가장 많다. 특히 이 앨범 재킷 뒷면의 사진이 이들의 음악성과 참 잘 어울리는 듯하다. 커다란 해바라기가 마치 태양처럼 그려져 있고, 그 밑에 들쥐 한 마리, 귀여운 버섯들… 뭐 그런 것들이 그냥 재미있어 보였다. 보통의 프로그레시브 음반의 재킷 사진은 상당한 수준의 미술 작품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는데, 이 앨범 역시 그 수준을 유지하면서 별 어려움 없이 동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환상적이고 우화적인 느낌을 주었다.

내가 이 앨범을 자주 들을 때는 항상 잠들기 전이었다. 좀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음악을 듣기 위한 의식인양 나는 방안의 불빛이란 불빛은 모두 차단한 채 듣곤 했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재킷 사진에 등장한 들쥐와 해바라기와 버섯 같은 다양한 대상들과 함께 온갖 상상의 나래를 폈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 지쳐 서울 변두리의 삭막한 아파트로 돌아온 나에게 클라투는 마치 한편의 동화책을 읽어주는 듯 다가왔고, 그때만큼은 일곱 살의 어린이가 되어 곤히 잠들곤 했다.

(글 김경열/ 이천에서 나고 자란 기타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현재 자작 앨범 작업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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