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우의 왈가왈부, 꼬리치는 논술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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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우의 왈가왈부, 꼬리치는 논술 <12>
  • 이천저널
  • 승인 2007.02.1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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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나폴레옹

‘우리가 먹고사는 것은 식료품 가게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가게 주인의 이기심 때문이다’

“경제 문제는 인간의 중요 관심사 가운데 빠진 적이 없어. 그만큼 삶의 기본적인 토대란 뜻이지. 그 경제가 사람 사는 일에 그저 친절한 관심만 보여주고 말면 그만이겠는데, 꼭 갈등을 일으켜. 그러니 문제지.”

“물질적 가치가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중심적인 가치로 바뀌면서 사람도 물질적인 이해 관계 아래 수렴되는 현상이야 누가 봐도 바람직하지 않겠지.”

“그게 산업 사회 이후에 일어난 특이한 현상이야. 이전의 사회가 금욕주의 성향을 보였다면 이후로는 향락주의 성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셈이랄까.”

“그 이전, 그러니까 17세기 문학 작품을 보면 그 시대에도 이미 돈 밖에 모르는 지독한 구두쇠가 등장하기는 해.”

“프랑스의 몰리에르가 쓴 <수전노>라는 희곡 작품인가?”

“그런데 사실 그 인물은 당시 사회의 전체적인 경향을 드러내는 인물은 아니었어. 하나의 특이한 인간상으로, 사람들에게 ‘뭐 저런 인간도 있겠군’하는 정도의 희곡적인 즐거움을 제공한 유형이었던 거지. 그때까지는 말이야.”   

“그러다가 차츰 문학에서 물질적인 가치의 노예라고 할 만한 인간성을 찾기가 쉬워져. 19세기 스탕달의 소설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어.”

“스탕달의 소설은 물질적인 이해 관계 추구가 사회 전체의 보편적인 경향, 모든 인간에게 편재((遍在)-널리 퍼져 있음. 편재(偏在)는 한곳에 치우쳐 있음을 뜻하는 말로, 쓰임새가 다르다-하는 관심이라는 점을 보여준 거야.”

“몰리에르의 <수전노>와 달리, 물질을 추구하는 가치관에서 벗어난 인물이 사회 규범에 맞지 않는 지극히 예외적인 인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거지.”

“바로 그 점이 스탕달의 소설을 산업사회에 대한 탁월한 증언이 되게 한 거야.”

“<적과 흑>(1830)은 나폴레옹이 사망한 지 10년쯤 지나 나온 소설인데, 나폴레옹하고는 무슨 관련이 없을까?”

“오늘날 프랑스를 만든 것이 근대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 덕분이라는 말도 있어. 물론 프랑스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뜨린 것도 그 사람 덕분(?)이지만. 왕이 통치하던 정치 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의 씨를 뿌리면서 전통적인 유럽 군주들을 아래로 끌어내린 선례를 만들었지.”           

“나폴레옹은 자신의 능력만으로 출세한 전형적인 입지전적 인물인데, 미천한 출신에 대해 심각한 콤플렉스를 지닌 정신적으로 불행한 사내였어. 항상 자신의 출세와 신분 상승에 골몰해서 영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세속적인 인물로 이해되기도 해. 당시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신적인 존재였지만 밖에서는 코르시카의 촌놈으로 불렸거든.”

“<적과 흑>은 나폴레옹 시대가 끝나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주인공 줄리앙 소렐처럼 재능은 있지만 신분이 낮은 젊은이가 군인으로 출세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난 거지.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될 수밖에 없었어. <군복(적)>과 <사제복(흑)>은 당시 평민들이 사제복을 상징하고 있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개인의 자유는 당시보다 크게 진보한 것이 분명해. 그런데 <적과 흑>에 나타난 빈부의 격차, 기회의 불평등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야겠지? 계급 사회의 모순이나 특권층의 허위 의식도 말이야.”

“<적과 흑>은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갈등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는데, 당대의 모순점들이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어. 이 작품이 발표 당시에는 통속소설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고전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야.”

“이전에도 역사적, 정치적 소설은 있었어. 하지만 동시대의 정치 체제를 본격적인 소재로 삼지는 않았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재를 역사로 인식하지 못했던 거지." 

"프랑스 대혁명(1789) 이후 얼마 안 지나 나폴레옹의 전제가 다시 시작됐고, 그후로도 몇 차례 반동이 거듭됐어. 영국에서 시민에게 선거권이 주어진 것은 1832년에 이르러서야. 시민혁명이 성공한 나라에서는 자본주의가 매우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어.” 

“자본주의 안에서는 흔히 인간성을 잃고 물질만을 추구하기 쉬워. 질보다 양을,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성장을 미덕으로 삼게 되지.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고, 그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문제삼지 않는 풍토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경제에서 윤리가 사라진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가 ‘우리가 먹고사는 것은 식료품 가게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가게 주인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말을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겠지.”

박정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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