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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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
  • 이천저널
  • 승인 2007.02.0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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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놀 시간을 달라!

   
『 하마 선생의 음식백화점 』
린다린 글/ 한수진 그림/ 김윤진 옮김/ 주니어 김영사

30분이 더 걸리는 숙제를 내주면
아이들은 숙제 심부름 가게로 달려가고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땅거미가 질 때까지 친구들과 놀던 때가 생각난다. 양말은 벗어 흙 묻은 운동화 속에 말아 넣고 가장 낮은 철봉대를 맨발로 올라가 딛고 섰다. 그러면 친구들은 내가 얼마만큼 갈까 목을 뒤로 젖히고는 바라보았다. 수평을 잡는다고 두 팔은 양 옆으로 한껏 벌리고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그렇게 해서 가장 높은 철봉대까지 걷기를 끝낸 나는 공연을 마친 광대처럼 쇠기둥을 끌어 잡고 미끄럼 타며 내려오고는 했다. 그 때 내 얼굴 위로 비치던 붉은 저녁 햇살이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언젠가 동생과 어릴 적 얘기를 나누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엄마가 바쁜 덕에 난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지 몰라” 정말 그랬다.

그 때는 대부분 석유풍로나 나무를 때 밥을 지었다. 세탁기는 물론 없었고 식구는 많았다. 학교 운동장과 골목길은 노는 아이들 소리로 늦게까지 늘 시끄러웠다. 엄마들은 ‘밥 때’가 되어서야 노는 아이들을 찾았다.

어쩌면 그 때의 엄마들은 아이를 세상에 내놓고 맘 편하게 키웠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무엇이 달라진 걸까. 수업이 끝난 오후 네 시면 학교 운동장은 늘 텅 비어 있다. 이제는 엄마의 자리에 있는 나는 무슨 감시 카메라도 아니고 내 아이의 하루를 제 꿰고 있다. 나는 때로 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렇듯 자유를 빼앗긴 아이들이 얼마 전에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학교에서 공부할 권리가 있듯이 놀 권리를 주장하는 아이들의 시위였다.

하마 선생의 음식백화점을 반대한다!
엄마들은 모두 부엌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엄마가 손수 만든 정성이 담긴 음식.
우리에게 놀 시간을 달라!

영양가도 많고 값도 비싸지 않은 새로 생긴 하마 선생의 음식 백화점에서 음식을 사 먹게 되자 엄마들은 더 이상 음식을 만들지 않게 된다. 엄마들은 모두 주방에서 벗어나게 되고, 한가로워진 엄마들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더 많이 보낼 수 있게 된다. 엄마들은 아이들과 놀아주기 보다는 아이들에게 끝도 없이 많은 숙제를 내준다.

이제 아이들은 밖에 나가 놀 시간이 없었다. 텅 빈 운동장은 썰렁하다 못해 차가운 기운까지 돌았다. 집에 갇힌 아이들은 견디기 힘들었다. 마침내 아이들은 함께 모여 하마 선생의 음식 백화점 앞에서 이런 항의 시위를 벌인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아이들의 시위에 대하여 침묵했고, 엄마들은 아이들을 하나씩 집으로 억지로 데려가 다시 숙제를 시켰다. 다행히 이 책 속의 아이들은 시위가 실패로 끝나자 다시 모여 멋진 생각을 해낸다. ‘아기 하마 숙제 심부름 가게’를 차린 것이다.

곧 이어 엄마들의 시위가 일어나고, 정부는 뒤늦게 회의를 하기 시작한다. 끝도 없이 계속된 회의 끝에 마침내 이런 결정을 내린다.

모든 학생들에게 30분이 넘는 숙제를 내 주어서는 안 되며, 만일 부모나 학교가 숙제를 더 많이 내주면 학생들이 ‘아기 하마 숙제 심부름 가게’를 이용해도 좋다고. 아이들은 정부가 정말 ‘공평’하게 일한다고 좋아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공평이란 단어를 읽다 보니 실바 신부가 스페인 오렌세 지역에 세운 ‘벤체스타 어린이 공화국’이 떠오른다. 실바 신부는 ‘거대한 교육 사업’에 고용된 아이들이 권리는 없고 의무만 주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이 받은 수업을 노동으로 인정하여 급료를 지급하고 있다.

‘대한민국 어린이 공화국’에서는 얼마나 많은 돈이 급료로 지급될까? 나 역시도 일하는 엄마로서,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학원을 순례시켜야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런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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