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도예에서 발견한 식탁 위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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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도예에서 발견한 식탁 위의 조화
  • 장수정 객원기자
  • 승인 2007.02.0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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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돔 테이블 웨어 페스티벌

   
일본 도쿄돔에서는 지난 2월 3일부터 ‘제15회 테이블 웨어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습니다. 12일까지 열흘 동안 진행되는데, 연일 많은 도자기 애호가들이 북적되고 있습니다. 이천에 살면서 도자기를 사랑하는 <토요도우회> 회원 6명은 몇 년 전부터 벼르던 일본 테이블 웨어전을 참관하러 왔습니다. 도예고등학교 정덕환 교장 선생님을 위시해서 선생님 다섯 분과 학생 24명이 함께 했습니다. 교장선생님도 도자기에 관심이 많아 평생교육 4기로 교육을 받고 있으며, 학생들과 함께 도자 산업 발전을 위해 테이블 웨어전을 하루 종일 돌아봤습니다.  <토요도우회>가 뭐하는 곳인지 궁금하시죠? 한국도예고등학교 평생 교육 동아리입니다. 도예고등학교에서 하는 성인들을 위한 도자교육을 1년간 수료하고 나서 자발적으로 결성된 모임입니다. 현재 3기와 4기가 교육을 받고 있는데, 교육 과정이 끝나면 동아리반에 들어와 계속 활동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열 명 정도 되는데, 매주 토요일이면 도예고등학교의 좋은 시설과 학교 측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열심히 도자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일본 테이블 웨어전은 도예고등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듣고 비디오 촬영해온 것도 봤습니다. 허나 막상 와서 보니 규모가 어마어마한 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 이것저것 부러워서 배가 아플 지경입니다. 어떻게 야구장을 식문화 전반에 걸친 전시회장으로 꾸밀 생각을 하게 됐을까요. 너무 좋아보여서 괜히 흠을 잡으려고 말을 꺼냈다가도 결국 우리나라에서 하는 테이블 웨어전이랑 도자기엑스포하고 비교도 되지 않아 제풀에 기운이 빠졌답니다. 

   
우선 일본 사람들이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행사장 입구는 한군데인데 한꺼번에 수십 명이 몰려도 안내하는 사람들 말에 따라 한 줄로 천천히 들어갑니다. 도쿄돔은 천장을 씌우고 공기를 방방하게 불어 넣어서 바깥하고 기압이 다르다고 합니다. 문을 열면 바람이 빠져나가면서 사람들도 빠져나갈 수 있어 회전문을 사용하는데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한 칸에 한 명씩 들어갑니다.

크게 떠들지도 않습니다. 돔 안에 들어가 관중석 맨 위에서 내려다보면 하얀 부스 칸막이와 까만 사람들 머리만 보입니다. 사람들이 야구장 전체를 메울 정도로 많았지만 웅성거림도 없이 조용하고 차분합니다.

   
▲ 대상받은 작품
더 신기했던 것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도시락을 하나씩 사들고는 관중석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관중석 낮은 곳에서부터 높은 곳까지 차례대로 앉아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합니다.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고, 식사가 끝나면 쓰레기하나 떨어뜨리지 않고 각자 깨끗하게 처리합니다. 그들 손에는 하나같이 도자기나 자신이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사서 들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놀란 일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전시회를 보러 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실수요자인 주부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젊은 엄마들도 많았는데 아이들은 거의 데려오지 않았고 설령 아이가 따라와도 조용하게 따라다니는 모습이었습니다. 중년 부인과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들도 아주 흥미롭게 전시장을 둘러보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여유 있어 보이고 그 분위기를 즐기는 눈치였습니다.

두 번째로 놀란 일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자기를 비롯해서 테이블 세팅에 필요한 물건들을 산다는 거였습니다. 물론 돈이 있다고 해서 보지도 않고 덥석덥석 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행사장을 몇 바퀴씩 돌아보고 요모조모 뜯어보고 오랜 시간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삽니다.

   
▲ 청강문화산업대 출품작
도자기 가격은 요즘 아무리 엔화가 떨어졌다고 해도 우리나라보다 대체로 비싼 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도자기를 생활용품으로 사용하려면 일정수준 이상의 소득이 보장되어야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인 1인당 GNP가 3만 7180달러로 우리나라 1만 3980달러보다 세배 정도는 많으니, 우리도 1인당 2만 달러 정도로 GNP가 늘어나면 도자기를 이것저것 사서 쓰게 되는 시대가 오리라 봅니다. 

테이블 웨어전은 말 그대로 식문화에 관련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행사장에서  직접 요리를 해서 그릇에 담아 보이고, 조리도구를 같이 전시해서 편하게 구매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릇이면 그릇, 요리면 요리, 데코레이션에서 기호식품까지. 전시장 안에서 주부들은 식문화에 관련된 모든 것을 찾아볼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를 한 게 놀랍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특이했던 것은 식탁을 차리는데 도자기 그릇만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공모전에서 보여준 테이블웨어로는 도자기는 물론 유리제품, 칠기류, 놋그릇들을 다양하게 사용해서 신선해 보였습니다. 도자기 접시에 놋쇠 밥그릇의 조화, 와인잔과 도자기 그릇과 나무 소품들의 어울림. 꽃으로 식탁을 장식하는 것은 기본이고 식탁보나 냅킨 같은 천 종류로 그릇이 더 돋보이게 하고, 금속제품의 수저나 포크 나이프도 디자인 감각이 살아 있는 것으로 식탁을 꾸몄습니다.

한 끼의 식사를 하는데 번거롭게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는가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단순하게 먹는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 담기는 그릇을 보고 만지고 즐기면서 식사하도록 식사하는 공간을 좀 더 특별하게 꾸며줍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테이블전은 다양한 주제와 전혀 다른 재질로 만들어진 식기류들이 잘 조화된 전시회였다고 봅니다. 청강문화산업대에서도 참가를 했는데 곡식과 한약재를 이용한 상차림은 일본 주부들의 눈을 사로잡고 한참동안 발을 묶어 놓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작가들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중산층 주부들도 도자기를 많이 쓰는 편이긴 합니다. 주로 이름 있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제품들을 쓰거나, 고가품의 외국 브랜드를 선호하지요. 이천지역에서 도자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주로 공방 도예 위주여서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로 좋은 것이 많이 나오고는 있지만 중산층 주부들의 눈을 끌지는 못하는 것으로 압니다. 이번에 ‘도쿄돔 테이블웨어전’을 둘러보면서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이나 소비자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몰라라하고 작가 정신으로만 만드는 경우와 되도록 제값주고 물건을 사지 않으려고 하는 이기적인 소비 심리가 도자기를 만질 수도 없는 비싼 감상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잘 만든 도자기도 판매 전략이 좋지 않으면 소비자가 외면을 하겠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사람이 많이 몰리는 도자기 행사 때, 많이 팔 요량으로 매장에 도자기를 가득 쌓아 놓고 판매에만 급급해하는데, 그러다보니 비슷비슷한 그릇이 많고 전시를 소홀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비자는 순간 좋아서 샀지만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몰라 비싼 돈을 들여 모처럼 장만한 도자기를 활용을 못하게 되는 일이 왕왕 일어납니다. 그러면 소비자의 재구매 욕구는 사라지고 말겠지요. 소비자들의 안목까지도 높여주면서 판매가 이루어진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봅니다. 도쿄돔 테이블 웨어전에서는 작가들이 자신 있게 만든 작품들을 한데 모아서 생활에서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전시를 통해 보여줍니다. 작품에는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 놓고 번호마다 판매할 수 있는 양만큼 작은 티켓을 놓아두면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도자기의 번호표를 가지고 계산대에 가져가 주문을 합니다. 그러면 직원들이 똑같은 것을 계산대 뒤에 있는 보관소에서 찾아다 줍니다. 이런 판매 시스템은 번잡하지도 않고 소비자의 감각이나 요구를 쉽게 파악해서 다음을 대비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고기 맛을 안다고 도자기도 써본 사람이 좋아서 또 사게 된다면 도자 산업은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 주부들이 가족들을 위해 또 도자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을 생각하며 컵 하나 반찬그릇 하나라도 우리 지역에서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도자기를 사용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되겠지요. 이상 도쿄돔 테이블 웨어 페스티벌 현장에서 전해드렸습니다.

2007년 2월 5일, 일본 도쿄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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