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 차나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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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 차나 한잔
  • 이천저널
  • 승인 2007.02.08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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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끼를 읽는 시간

바슐라르는 ‘피상적으로’ 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는 끝까지 그가 읽는 저자를 따라가지 않고, 책을 읽다가, 그의 생각을 자극하는 대목이 나오면 그때부터 그는 그 책을 따라가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상상력을 따라간다고 한다. 그래서 바슐라르는 “책이 좋은 것은 언제든지 그것을 덮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음대로 그가 읽는 책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책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이점이라는 것이다.

김현은, 이 같은 바슐라르의 책 읽는 방법, 곧, 남의 책을 ‘피상적으로’ 다시 말해서 ‘잘못’ 읽는다는 것은 그것을 쓴 저자 속에 갇히지 않겠다는 독창적인 사고의 표현이며, 그런 그의 생각 밑에는 어떤 것도 완전히 올바르고 객관적이지 않다는 신념이 숨어 있다고 읽는다(그렇다면 김현의 이 같은 바슐라르에 대한 독서는 객관적인가 피상적인가).

그러나 어디 바슐라르뿐이랴. 모르긴 해도 대다수의 독자들은 자신들의 지적 토양과 관계없이 이미 이런 독서 방법을 오래 전부터 ‘은밀하게’ 즐겨왔을 것이다. 왜 은밀하게냐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고전적인 독서 방법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런 독서 행위는 완전한 책읽기가 아니며, 심지어는 부정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진실성이지 어떤 방법에 대한 맹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라고까지 불리는 러시아의 작가인 고리끼의 산문 중에 ‘사람이 혼자 있을 때 하는 짓’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나는 그 글을 읽기도 전에 제목 앞에서부터 긴장했다. 그가 나만의 은밀한 무엇을, 마치 남의 얘기인 것처럼 어쩌고저쩌고 하며 죄다 말해버릴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나를 알고 있다는 듯이 나를 안심시켰고, 나는 곧 편안해졌다. 고리끼는 내게, 자기가 우연히 본 바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혼자 있을 때 정신 나간 듯이 행동한다고 속삭였던 것이다. 고리끼가 말해준 몇 사람의 정신 나간(?) 사례를 짤막하게 소개해야겠다.

론데일이라는 어릿광대는 어두컴컴하여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서커스 흥행장 복도를 왔다 갔다 하더니, 거울 앞에 멈춰 서서 뾰족한 모자를 벗으며 거울에 비친 자기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 복도에는 그 사람 말고 아무도 없었다.

체홉은 정원에 앉아서 모자로 햇빛을 잡아채서 머리에 뒤집어쓰려는 시늉을 했다. 자꾸 실패하자 그의 행동은 조급해졌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개를 밀쳐 놓고는 힐끔힐끔 하늘을 보며 건물 쪽으로 다가갔다. 그 때 현관에 있는 고리끼를 보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잘 있었나. 발몬트의 ‘태양은 풀냄새를 맡으며’라는 시를 읽어본 적이 있나? 말도 안 돼, 안 그런가? 러시아의 태양은 카잔 비누 냄새를 맡고, 그리고 여기선 타타르의 땀 냄새를 맡겠군.” 그뿐만 아니라 체홉은 아주 진지하게 빨간색의 두꺼운 연필을 작은 약병의 병목에 꽂으려고 애쓰는 습관도 있었다.

톨스토이는 언젠가 한 번, 도마뱀에게 귓속말을 하듯 이렇게 속삭였다. “행복하지, 그렇지?” 그 도마뱀은 길가 관목들 사이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는 그런 도마뱀을 지켜보다가 다시 주위를 살피고는 도마뱀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그렇질 않아!”
내가 읽은 고리끼는 낭만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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