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보다 더 좋은 수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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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보다 더 좋은 수업은 없다
  • 이천저널
  • 승인 2007.01.0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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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양고등학교 가정수업

   
“안녕하세요. 여러분과 일 년 동안 기술·가정 수업을 하게 된 박수경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배울….” “선생님! 질문 있어요. 실습 언제해요?” “맞아요. 뭐 해 먹어요. 맛있는 거 해요.” “피자 만들어요.” “아냐, 스파게티해요” “탕수육은요. 깐풍기도 좋고.”
기술·가정 시간의 하이라이트는 조리 실습인 듯하다. 늘 그랬듯이 그동안 해온 조리 실습의 대부분은 선생님이 정해준 음식으로 주어진 조리법에 따라 똑같이 만들어 배불리 먹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조리실습 수업의 의미가 단순히 맛있는 것을 만들어먹는 시간뿐일까? 샌드위치나 햄버거 같은 획일적인 조리법에 의한 간단한 서양식 음식에서 탈피해 우리 식탁의 기본이라는 밥을, 나아가 우리 음식을 만들어보는 기회로 삼으면 안 될까? 똑같은 조리법에서 벗어나 아이들 스스로 조리 내용을 정하고 조리 방법을 찾는 그런 창의적인 시간을 가지면 안 될까? / 효양고등학교 가정교사 박수경

교육 과정에 따르면, 기술·가정 교과는 체험 학습을 통해 개념과 원리를 이해시키고, 의사 결정 능력, 문제 해결력, 창의력 등을 기르는데 도움을 주며 일의 경험을 통하여 자신의 적성을 계발하고 진로를 탐색하며 일에 대한 건전한 태도를 가지도록 하여 21세기를 살아갈 능력을 가진 인간을 기르는 데 필요한 직접적이고 실천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교과라고 서술되어 있다. 좀 거창하긴 하지만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바로 이런 기술·가정 교과가 추구하는 교육 목표를 제대로 달성할 수 있는 수업이 조리실습이다.

우선 조리실습 수업은 구체적이다. 음식을 입으로 만들 수는 없으며, 무대 같은 특정 공간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만들어진다. 또 하나는 실습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자기 스스로의 체험으로 이루어진다. 자연히 학생 중심이다. 또 이 과정을 통해 창의력과  의사 결정 능력, 의사소통 능력, 인간 관계 기술, 협동심 등이 길러진다. 상상해보라, 부엌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그리고 여기에서 가사 노동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생기고, 나아가 위생·청결 의식은 물론 식사 예절과 초대 예절까지 배울 수 있다니 이 보다 더 좋은 수업이 있을 수 있을까?

D-21일

나라 일을 보는 데에도 준비된 대통령이 필요하듯이 조리실습을 통해 이만한 가치를 얻으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일단 수업 3주전에 조리 실습 주제를 발표한다. <창작 김밥 만들기 ‘효양 요리왕 대회’>로 타이틀을 정했다. 반별 모둠을 정하고 학교 홈페이지에 김밥 만들기를 위한 기본 조리법을 공개한다. 조별로 기본 김밥 재료를 이용한 모둠별 창작 김밥 조리법과 실습 과정을 프리젠테이션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아, 어찌나 시끌벅적한 토론이 이루어지든지.

D-7일

창작 김밥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모둠별 조리 특징과 조리 과정, 재료와 분량, 역할 분담 등에 대해 발표한다. 발표 후에는 조별로 독특한 재료의 조리 방법이나 구입 방법, 특징, 영양가 등을 다른 학생들과 교사가 함께 토의하는 과정을 통해 수정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공통으로 주어진 재료 외에 부가적으로 필요한 재료는 조별로 준비하되 너무 비싼 재료는 대체 식품을 찾거나 다른 조리 방법으로 유도한다. 교사는 중학교 때 배운 기본 조리 방법을 복습시키고 조리 용구의 사용 및 가스 점검 등 안전사고에 대한 주의를 준다. 아울러 조리할 때 지켜야 할 위생과 청결을 강조한다.

D-day

드디어 실습 날. 가사 실습실을 ‘효양 요리 왕 경연대회’장으로 꾸며 수업의 흥미와 성취도를 높인다. 드디어 요리 시작! 조별로 실습이 시작되면 조원 중에 한명은 조리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사진을 찍어 다음 발표 수업을 준비한다. 조리가 끝나는 3교시에 수업이 없으신 선생님들을 모셔와 접대 예절도 배울 겸 요리 왕 대회의 심사를 부탁한다. 시식 후 요리 왕 모둠을 발표하여 시상한다.

After

실습 과정을 기록하고 사진으로 정리하여 모둠별로 프리젠테이션 시간을 갖는다. 이때 잘한 점과 잘못한 점, 느낀 점을 이야기한다. 자기 모둠의 실습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모둠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음식을 완성했는지 잘 모르고 지나가기 쉬우므로 이 과정을 통해 실습 과정을 전반적으로 다시 살펴본다.

왜 김밥 만들기였나?

주제를 김밥을 정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가장 기본적인 조리 과정, 곧 밥하기, 썰기, 볶기, 데치기, 무치기, 부치기 등을 두루 해 볼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일품 요리로 영양가도 높고 재료 구입도 쉬워 가정에서 혼자서도 다시 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또 하나는 창의성과 독창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요리라는 점이다. 흔한 누드 김밥부터 태극 김밥, 물방울 김밥, 곰돌이 김밥, 계란말이 김밥 등 모양에 중점을 둔 경우부터 불닭 김밥, 묵은 김치 김밥, 탕수 김밥, 날치알 김밥 등 다양한 맛과 모양을 지닌 김밥의 향연이 열렸다.

가장 힘들었던 밥하기

실습 과정 중에서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은 밥하기였다. 왜냐면 한 번도 해본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가사실습실에는 전기밥솥이 없느냐, 집에서 가져와서 해도 되느냐 등등 여러 가지 방법이 나왔지만 냄비에다 직접 밥하기를 기본으로 했다.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하는 아이들에 불만을 뒤로 하고 강행한 밥하기는 “이젠 나도 밥을 할 수 있다”, “밥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과정인지 몰랐다. 엄마한테 감사한다”, “내가 한 밥이 최고였다” 등등 가장 기억 남는 과정이라는 소감이 많았다.

창의력에 문제 해결 능력까지

다양한 모양과 다양한 재료로 만든 김밥을 볼 때 가장 흐뭇했다. 처음 하는 요리니만큼 처음 의도했던 것과 달리 원하는 모양의 김밥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이들은 있던 재료를 이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김밥을 탄생시켰다.
삼색 김밥을 준비했던 한 모둠은 원하는 색이 잘 나오지 않자 볶은밥을 만들어 김밥을 만들고 주먹밥을 만들어 김가루를 씌워내는 재치를 보이기도 했다. 아울러 학생들의 개성과 교실 수업에서 보지 못했던 개개인들의 성향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친구들과 같이 할 수 있어 좋았다”

세 시간동안 대여섯 명이 김밥 10인분은 만드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각자 맡은 일을 잘 수행하는 것 말고도 많은 대화와 이해를 통해 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 친하지 않았던 친구들과도 하나의 목표를 위해 같이 땀을 흘리는 특별한 체험은 학생들에게 열린 마음을 갖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친구들과 같이 한 시간이 좋았다”,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소감문은 그 점을 상기시킨다. 또 요리 왕 선발이라는 이벤트도 동기 유발과 모둠별 경쟁 의식을 높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썩 괜찮은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 이 시간만큼은 입시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확 날려주고 서로의 우정을 나누게 하는 그런 시간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면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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