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는 교육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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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는 교육 공동체
  • 이천저널
  • 승인 2007.01.0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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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프리스콜레와 에프터스콜레

덴마크 근대 교육의 전개 양상

덴마크의 근대 교육의 전개 양상을 볼 때 몇 가지 놀라운 점이 있다. 하나는 아주 이른 시기에 즉, 이미 1814년에 7-14세 아동들에 대한 의무교육 제도가 국가적 차원에서 도입되었다는 것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의무 교육이 여자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는 데서 찾아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이 언뜻 보아 깊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이 국가적 제도에 대한 반대의 견지에서 ‘자유학교’들이 1800년대 중엽에 이미 태동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들은 명백히 오늘날의 ‘대안학교’ 범주에 속하는 것이자 그 선구적 형태라 할 수 있다. 셋째는 그러한 시도들이 다양한 유형으로 또 상당히 커다란 규모로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또한 오늘날까지 그 맥이 한번도 끊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 역사적 시점을 따져보면 지금으로부터 1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사례는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런 역사적 전제 속에서 다음 세 가지 유형의 자유학교들이 만들어졌다.
* 프리스콜레(friskole): 1~10학년 아이들을 위한 통합적 종합학교로서의 자유학교(200여 개). - 초중학교
* 에프터스콜레(efterskole): 8~10학년(14-17세) 아이들을 위한 학교로서, 두 가지 부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하나는 학교 생활에 싫증을 느끼거나 공부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한 영역(음악, 체육, 수공예 등)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다(235개).
* 회이스콜레(hojskole): 민중대학 내지 평민대학, 혹은 시민대학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자유평생교육기관으로 18세 이상 청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100여개) 국민 대중, 특히 농민을 18세기 중엽 민주적 정치체제를 향해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던 덴마크 사회를 배경으로 문화적으로 계몽하고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이들 세 가지 학교를 배경으로 20세기 중엽 이후 또 다른 세계관이나 사회문화적 근거 하에 릴레스콜레(Lilleskole), 자유 실업학교(realskoler), 발도르프 학교 같은 다양한 자유학교들이 설립된다. 이렇게 놓고 볼 때 덴마크는 학교의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거대한 실험실’ 같이 보인다.
이중에서 처음 세 유형의 학교, 즉 프리스콜레와 에프터스콜레, 회이스콜레는 오늘날 덴마크 자유교육의 역사적 기원과 그 전개상황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들이자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가장 영향력 있는 자유학교들이다.
덴마크의 모든 중요한 학교법(구조, 재정, 교사양성 등)은 정치적 합의 위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자유학교와 공립학교는 동일한 국가 조직과 학교법(구조, 재정, 교사양성 등)의 관장 하에 놓여져 있다. 덴마크 자유학교들이 보여주는 특이한 현상은 역사적으로 프레데릭 세베린 그룬트비(N.F.S. Grundtvig, 1783-1872)와 크리스텐 콜(Christen Mikkelsen Kold, 1816-1870)이라는 두 사상가로부터 유래한다.

자유 교육 운동의 사상적 배경

덴마크 자유 교육 운동의 사상적 배경으로는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경건주의라는 세 가지 정신적 흐름을 거론할 수 있다. 그룬트비와 콜은 덴마크 사회가 과거의 정치적, 종교적 인습으로부터 새로운 질서로 이행하고 있던 와중에서 살았다. 정치적 민주화의 바람 속에서 절대 왕정이 종식되었는가 하면, 국가 제도적 교회의 신앙 틀은 신앙의 주체적-내면적 체험을 강조하는 신앙 양식에 위협을 받게 되었다. 전자가 계몽주의 및 자유주의와 관계있는 것이라면, 후자는 경건주의와 관계가 있다.

그 핵심 모티브는 19세기 중엽 변화되기 시작한 정신적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모든 문제를 자기 책임으로 이해하려는데 있다. 경건주의 신앙운동의 영향 하에서 사람들은 하나님과 자신들과의 관계를 국가 교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규정지으려 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자 경제, 직업 생활, 정치 문제도 그런 방향에서 해결하기 위해 씨름하기 시작했다. 자유교회나 낙농 및 도축 협동조합, 소비자 협동조합, 민중들의 집회 장소 같은 것들이 모두 이런 노력의 결과로 탄생되었다. 정부나 관청이 움직이지 않으면 민중들은 곧바로 주도권을 행사했다. 이 새로운 정신적 흐름의 선두에 그룬트비와 콜이 서 있었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학교들도 설립되기 시작했다. 이 다양한 학교들은 다시 말해서 국가가 아니라 민중들의 손에 의해 설립된 것이다. 그 최초의 것으로는 그룬트비의 『북유럽국가들의 신화』에 대한 해설서를 펴낸 플로어 교수(Kiel Uni.)가 그룬트비 사상에 입각하여 슬레스비 공작 영지에 농민들과 함께 시작한 학교이다(1844년). 지역농민들도 스스로 학교를 세웠다. 농민학교(peasant school), 청년을 위한 농민대학(peasant high school), 어린이 프리스콜레(free schools for children) 등.

그 중에서 최초의 시도이자 가장 성공적인 것이 바로 앞서 이야기 한 콜의 기숙형 회이스콜레와 프리스콜레이다. 1860년 말에 이르러 콜의 모형을 따라 프리스콜레 운동은 대대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은 지역의 공립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스로 학교를 세웠다. 그 특징은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대신에 집에서 가르쳤으며, 만일 스스로 할 수 없으면 힘을 합쳐서 가르쳤다. 이러한 노력들이 바탕이 되어 다양한 프리스콜레들이 탄생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학부모들은 후견인이나 교육 전문가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다만 필요할 경우 교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대목에서 그런 시도를 한 학부모들이 보통 회이스콜레의 졸업생이었다는 점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즉 회이스콜레와 프리스콜레는 그룬트비와 콜의 정신적 영향력 속에서 성장해 온 시도들이라는 말이다.

현대적 프리스콜레와 에프터스콜레의 특징

지난 1930년대 설립된 수많은 사립학교들은 상당한 수준에서 개혁 교육학적 단초를 함축하고 있다. 현대적 프리스콜레나 릴레스콜레(lilleskole)의 경우 이 성격은 강하다. 이것은 사립학교 영역에서 또한 공립학교 영역에서 발생했다. 그것은 실제 문제가 있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학부모들이 주관적으로 그렇다고 느낀 데서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공립학교에서 사립학교로 옮겨가거나 사립학교를 설립하는 식으로 상황이 전개되었다. 종교수업을 너무 적게 한다는 이유에서는 기독교 종립 사립학교의 형태를 그 대안으로, 종교수업이 너무 많다고 느낀 경우에는 릴레스콜레를 그 대안으로 등. 최근 사립학교들은 특히 대도시에서 번창하고 있다. 개혁교육학의 사상적 단초는 현대 프리스콜레와 릴레스콜레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들 학교 안에서 시도되는 교육학은 보통 공립초등학교와 명백히 구분된다.

프리스콜레

* 200여개 학교가 있다.
* 학령전 유치원 교육을 받는다.
* 입학 연령은 만 7세(6세의 경우도 있으나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않음)이다.
* 1~9학년, 통합교육을 하되 보통 성취도에 따라 수준별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 9학년 이후에는 3년간의 김나지움 과정이 이어진다.
* 경우에 따라(자유의사에 따라) 10학년까지 다닐 수도 있다.
* 낙제는 없다.
* 교육과정은 모든 학생들에게 추천적 성격을 지닌다.
* 공립학교의 경우 7학년부터 성적을 매긴다. 사림학교는 자체 평가방식에 따른다.
* 교과서 허가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 9학년 말(경우에 따라서는 10학년 말에) 교육부가 시행하는 졸업시험을 치른다. 이 경우, 핵심교과인 덴마크어, 수학, 영어와 아울러 선택과목에 대하여 시험이 부과된다. 시험은 지필 고사와 구술고사로 이루어진다. 그 목적은 핵심교과영역에서 기본능력과 기본 지식을 습득했는지를 국가가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최종단계까지 무슨 방법으로, 무슨 수업매체와 교재를 써서, 무슨 교육과정으로 공부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자유학교의 의사에 달렸고 여기에 대해 묻지 않는다.

에프터스콜레

* 14-18세 청소년들이 다닌다. 8~10학년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다니며, 공립학교를 다니는 대신에 1년간의 재학기간을 선택하여 다닐 수 있다. 졸업시험을 통과하는데 공립학교와 동일한 자격을 부여받는다.
* 모두 기숙학교 형으로 재학기간은 원하는데 따라 1~2년 정도이다.
* 학교의 평균 규모는 85명 정도이다.
* 대부분의 에프터스콜레는 전원이나 마을 가까이 위치해 있다.
* 에프터스콜레는 ‘일반 교육’(general education)을 제공한다. 기초적 과제를 다루며, 청소년 개개인의 전체적 발달을 목적으로 한다.
* 교육 과정이 자유롭다. 공립학교 교육 과정과는 아주 다른 구조로 운영된다. 모든 학교들이 단일한 교육 과정으로 운영되지는 않는다. 학과목 구조, 교수, 교수법을 학교마다 자체의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
그 내용과 방식은 학교가 어떤 노선을 취하고 있느냐에 따라 상이하다. 둘이나 그 이상의 계열을 바탕으로 운영한다. 예컨대 그룬트비-콜 식의 학교는 일반교육과 계몽이라는 노선을 견지하되, 폭넓게 창조적 교과를 운영한다. ‘체육 에프터스콜레’는 신체교육을 강조하기는 하나 그룬트비 사상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매우 ‘고전적’이다. 어떤 학교는 경건주의적 성서읽기에 기초한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학교는 교실수업보다는 다양한 워크숍과 현장 연구에 치중한다.
또 어떤 학교는 몇 개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운영한다. 여기서는 학생과 교사가 함께 기간에 따라 공부할 주제를 논의하여 결정한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에프터스콜레는 공립학교와 동일한 졸업종합시험을 치르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각각의 학교는 이런 점을 고려하여 그들의 특수성을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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