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서의 이것이 수리 논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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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서의 이것이 수리 논술이다
  • 이천저널
  • 승인 2006.12.2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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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과 아인슈타인이 헤어진 곳
뉴턴이 자신의 역학체계를 발전시킨 기본사상은 기계론적 자연관이다. 뉴턴의 이러한 사상적 기초는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에서 유래하는데, 기계론적 자연관이란 쉽게 말하면 이 세계는 인간과는 독립되어 스스로의 불변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세계를 이루는 물질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고립된 객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불변의 법칙을 표현할 때 뉴턴이 쓴 도구는 바로 수학이었다. 그래서 그를 두고 데카르트의 ‘자연에 대한 수학화’를 실현하였다고 하기도 한다.
뉴턴이 생각하는 세계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정한 크기와 양(量)을 가진 물체와 그 물체를 움직이는 에너지로 이루어져있다. 따라서 (절대)시간, (절대)공간, 물체, 에너지의 이 네 가지 요소는 자연을 탐구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지난 호에서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만났던 곳인 ‘진공 중에서의 빛의 전파법칙’과 ‘(제한적 의미의) 상대성원리’가 모순됨을 보았다. 이제는 아인슈타인이 결정적인 한방을 날려 뉴턴을 잠재운,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 에너지와 물체의 상대성을 살펴보겠다.
그림과 같이 속도 v로 철로를 따라 등속직선운동을 하는 아주 긴 기차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기차를 타고 가고 있는 철수는 이 기차를 강체(剛體)인 기준체(철수의 좌표계)로 이용할 수 있다. 철롯둑(영희의 좌표계)에 있는 영희는 둑을 기준체로 삼을 수 있다.
그런데 A와 B 지점에서 동시에 번갯불이 쳤다. 영희는 A와 B의 중간점인 M에 있다. 따라서 A와 B에서 친 번갯불은 동시에 영희에게 도달하게 된다. 철수는 번개가 치는 순간에 기차안의 M'에 앉아 있다. 번개가 치는 순간 M점과 M'은 일치했다.
영희는 A와 B의 번갯불이 동시에 치는 것을 보았는데, 그렇다면 달리고 있는 기차 안의 철수도 그렇게 보았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번개 B가 A보다 일찍 철수에게 도달했을 것이고, 철수는 번개 B가 먼저 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즉 영희에게는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 철수에게는 동시에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둑을 기준으로 동시였던 두 사건이 기차를 기준으로 하면 동시가 아니며, 또한 그 역도 성립한다(동시성의 상대성). 모든 기준체(좌표계)는 그 기준체 자체의 특정한 시간을 가지며, 따라서 기준체에 대한 언급이 없는 시간의 진술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상대성이론 전에는, 물리학에 있어서의 시간은 절대적인 의의가 있었다. 즉 시간은 기준체의 운동 상태와는 무관한 것으로 가정되어 왔었다. 그러나 이 가정은 위에서 살펴본 아주 자연스러운 동시성의 정의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이 가정을 버린다면 ‘진공 중에서의 빛의 전파법칙’과 ‘상대성 원리’사이의 모순은 사라지게 된다. 이제 우리는 지난 호에 실렸던 다음의 제시문 (다)의 문제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
제시문 (다) 철로를 따라 기차가 속도 v로 등속병진운동을 하고 있다. 한 사람이 기차 내에서 속도 w를 가지고 기차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 사람이 1초 동안 이동한 거리를 기차 밖의 철롯둑과 같이 고정된 곳을 기준으로 보면 v+w가 된다. 이것이 뉴턴역학에서 사용되는 속도합산에 대한 정리이다.
즉, 기차를 기준으로 어떤 사건이 생기는데 필요한 시간은 둑에서 판단한 같은 사건이 필요로 하는 시간 간격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차 안에서 1초 동안 이동한 거리 w는 둑을 기준으로 하면 w가 아닌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상대성이론에서 로렌츠(H. Lorentz 1853∼1928)의 변환(transformation)을 이용하여 서로 다른 좌표계(기차와 둑)간의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을 아주 간단한 수학적 표현으로 정리해 내었고, 이 이론은 앞선 시대의 피조(A. Fizeau 1819∼1896) 등이 행한 실험결과와 잘 맞아 떨어졌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그의 이론에서 역시 같은 변환을 이용하여 위 공식으로 유명한 에너지와 질량간의 상대성을 밝혀내었다.
이로써 300년을 지배했던 뉴턴의 역학은 그 권력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게 된다. 더불어 그가 애지중지하던 시간도 공간도 물체도 에너지도 모두 빼앗겼다. 이후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토대로 발전한 현대물리학은 좀 다른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세상을 이루는 가장 작은 알갱이인 원자는 원자를 이루는 더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입자들의 움직임은 ‘있다’, 혹은 ‘없다’라고 딱 꼬집어서 말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확률’이란 개념으로 설명을 시도해 오고 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런 물리학자답지 않은 행태들(물론 아인슈타인 자신만의 생각)에 찬성할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 세상은 어디까지나 ‘있는’ 것이고 우리가 충분히 똑똑하면 그 법칙을 알아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럼, 아인슈타인은 어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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