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구의 우리말의 멋과맛 <5>
상태바
윤원구의 우리말의 멋과맛 <5>
  • 이천저널
  • 승인 2006.12.14 1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주병 자빠지면 대통령 탓?

올겨울은 따뜻한 날이 많을 거라는 예보가 있었습니다. 지구가 데워진 탓에 엘니뇨가 강해지고, 그 영향이 한반도까지 미치기 때문이랍니다. 비닐하우스로 겨울 농사를 하는 농민들을 울리곤 했던 폭설도 그 탓이라지요?

칠레 앞바다, 동태평양의 바닷물 온도가 여느 때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엘니뇨(El nino)는 아기 예수를 뜻하는 스페인어입니다. 엘니뇨는 대개 크리스마스 무렵에 생깁니다. 바닷물이 따뜻해지면 고기가 잡히지 않는데, 출어할 일이 없게 된 어부들은 데워진 바다를 탓하는 대신에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된 것을 고마워합니다. 아기 예수 덕분이라는 거지요. 이렇듯 엘니뇨는 재앙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여유로운 그 마음 밭이 부럽습니다.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은 너무 흔히 쓰입니다. 글 못하는 놈이 붓 고르고, 서투른 무당이 장고 나무라며, 쟁기질 못하는 놈이 소 탓합니다. 이웃집 소가 담을 받았습니다. 소는 뿔이 부러졌고 담이 무너졌습니다. 네 쇠뿔이 아니면 내 담이 무너지랴, 네 담이 아니면 내 쇠뿔이 부러지랴 싸웁니다. 목이 멘 개는 뼈다귀를 탓하고 넘어진 소경은 지팡이 탓만 합니다. 개천 나무라는 장님도 있습니다. 소경이 그른가요, 개천이 그른가요? 한동안 떠들썩하던 ‘내 탓이오’ 운동은 가을 부채마냥 값이 떨어졌습니다.

내 앞길이 당장 거칠어 보이니 남 탓하고픈 심정도 생기겠지요. 그런 세파 가운데에서도 ‘긍정의 힘’이라는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니 다행스럽습니다. 하룻길을 가다보면 소도 보고 말도 보는 법입니다. 한 치 기쁨에는 한 자의 슬픔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손톱은 슬플 때마다 돋고 발톱은 기쁠 때마다 돋는답니다. 한 자의 길이가 한 치의 열 곱이고, 발톱보다 손톱이 훨씬 빨리 자라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요즘의 여의도 포장마차, 술 먹다가 소주병이 자빠지면 ‘노무현 탓’이라고 한다지요? 칠레 어부들의 마음씨를 배우기 바랍니다.
/ 프리랜스 카피라이터

이천저널
이천저널
webmaster@icjn.co.kr
다른기사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