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이끄는 방법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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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이끄는 방법을 배우자
  • 이천저널
  • 승인 2006.12.1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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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점은 글의 전개를 위해 제안된 일반적인 전략에 의한 ‘최초의 펌프’다.

그들은 관성을 극복하도록 돕는다.
마치 자동차 경주의 출발선에 선 레이서처럼 시동을 걸고 쉼 없이 엑셀레이터를 밟아댄다.
-에드워드 코베트

논점에 대한 공부를 더 진전시키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그 등급을 한 단계 더 높여 특별한 지식에 의존할 때 학생들은 자신이 공부해야 할 새로운 분야를 만나게 된다.

쫖 생각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방법의 학습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을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로 정의하는 데 쉽게 동의한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우리는 문명을 이루는 수많은 개념과 다양한 태도, 가치 그리고 기술의 실체를 창조하고 해석하는 것이 오직 언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오직 언어에 의해서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한다. 따라서 언어가 없이는 정치는 통치할 수 없고, 과학자는 자신의 발견을 설명할 수 없으며, 인간들은 현명한 행동을 하자는 합의에 도달할 수 없다.

의사 전달 기능으로서의 언어의 가치는 과장할 수 없을 만큼 크지만, 사고의 기능으로서의 언어의 가치는 그보다 더 중요하다.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계속해서 진행되도록 이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말할 때까지,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모른다”는 수사학자들의 농담은 언어가 단순히 논리적 사고의 수단으로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이 있는 감각과 태도를 탐구하는 한 방법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쫖 언어는 설명하려기보다 본질적인 것을 추측하도록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완전한가? 아시다시피 우리의 언어 수행 능력은 우리가 그토록 신뢰하는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인 근거에 의해 구축된 것이 아니라 경험에 의해 갖추어진 것이다. 언어학자인 노엄 촘스키의 말대로 하면 태어나면서 저절로 주어진 것이다.
언어 능력은 특별한 원칙이 없는 앞선 예들에 대한 모방과 실습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불변의 원칙을 갖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언어 사용은 누구나 한결같지 않으며, 무의식적이며, 불명확하며, 불규칙하다. 언어의 이런 규칙성 결여는 결국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것을 남에게 그대로 설명하기보다는 그로 하여금 본질적인 것을 추측하도록 하는 언어의 특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트겐시타인은 말한다.

그렇다면 그 ‘결여’를 메우고, ‘추측’을 확신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어떤 운용 체계, 곧 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그것은 어떻게 쓰일까?

쫖 자신의 생각을 이끌어가는 ‘창안’

학생들은 하나의 글을 쓰기 위한 제재를 부여받으면 그것을 잘 정돈된 논제로 발전시켜야 한다. 만일 글로써 누군가를 설득시켜야 한다면 그 제재를 이끌어나갈 논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설득의 방법은 두 가지다. '논증'이 아니면 ‘감동’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논술은 이성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이때 학생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방법이 연역과 귀납이다. 연역적으로 토론하려면 그는 삼단논법을 사용해야 할 것이고, 귀납적으로 호소하려면 충분한 유도문과 예문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들이 부여받은 어떤 문제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기껏해야 불분명하고 난삽한 생각의 덩어리를 끌어안고 있을 뿐이다.

자, 바로 그런 학생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자신의 생각을 이끌어갈 무엇인가를 끄집어내고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수사학적 용어로 ‘창안(Inventio)’이라고 한다. 창안이란 자신의 논거를 펼칠 인간의 기본적인 요구, 곧 설명하고, 믿도록 만들고, 비교하는 따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그렇다면 분명하지 못한 지식과 생각을 가진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어떤 시스템은 없는 것일까?         

쫖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학생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상황에 따라 적합한 논법을 올바르게 이끌어갈 수 있는 탁월한 통찰과 예견력이 떠오를 때를 마음속에 그린다. 그러나 같은 행위를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학생들에게 우연하게 논법이 저절로 생각을 따라오는 행복한 조건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만일 꿈이 아닌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학생들은 몇 가지 논점을 공부하면 된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용어들을 정의하고,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그 기준과 다름의 정도를 알아내고, 그것들의 인과 관계를 생각해보고, 그 가능성을 따져보는 일이 바로 그 논점의 영역 안에 있다.

이 논점들을 차례로 통과하면서 학생들은 우연하게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학생들은 침착하게 그 가운데 자신이 의도한 상황에 적절한 논점의 엑셀레이터를 밟아대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우리는 ‘생각한다’고 말한다.
▶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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