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우의 왈가왈부, 꼬리치는 논술 <4>
상태바
박정우의 왈가왈부, 꼬리치는 논술 <4>
  • 이천저널
  • 승인 2006.12.14 1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기 생각을 근거로 남을 설득하기

논술이는 다른 강아지들보다 일찍 잠드는 편이다. 저녁 공부를 마치면 곧바로 눈꺼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오늘은 내내 뒤척거리고만 있는 품이 또 무슨 궁리질인지 알 도리가 없다. 여태 귀가하지 않은 삼촌을 걱정하나? 그토록 기특한 강아지로 여길 근거가 없다.

지난 장마에 삼촌은 새벽 공을 차다가 발목뼈를 다쳤다. 그러고도 산행에 나섰다가 저물녘까지 내려오지 못하더니 결국 9시 뉴스에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깨우자 논술이는 날씨 탓보다 먼저 사람 탓을 했다.  

“산에 오르면 산의 법을 따라야지. 저게 뭐야. ”

“살면서 한 번쯤 텔레비전에 나오지 말란 법도 없는데 뭘 그래.” 
“산도 하나의 마음을 갖고 있는 건데, 자기 맘대로 하면 안되지.” 
“등산을 알아? 산에 올라 본 적이 있던가?”
“상관없습니다. 죽어봐야 인생을 알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합격해봐야 논술 시험이 뭔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 뒤로 흔들어도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깊이 잠든 논술이를 확인한 뒤에야 9시 뉴스를 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새로운 소식을 듣기도 벅찬데 일일이 쏟아지는 논술이의 참견까지 감당할 만큼 쾌활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국회위원들은 덜 바쁠 때, 말많은 강아지들에게 9시 뉴스 시청을 금하는 입법에도 신경을 써줬으면 싶었다.  

9시 뉴스가 끝나고, 일기 예보가 내일의 흐린 날씨를 알리면 더 걱정스러운 쪽은 삼촌의 오늘이다. 집에 들어오는 시각을 정해두고 거기에 맞춰 자신을 움직이며 사는 정도의 인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매번 걱정을 안 해 줄 수도 없다. 나는 다시 논술이를 재울 요량으로 말을 걸었다.

“종종 나한테 경어를 쓰는데, 그건 화제를 돌리고 싶다는 뜻이지? 그렇다고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지나치게 사용하면 그것도 예의는 아니야.”
“아, 물론입니다. 생각하는 법, 접근하는 법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훈련에만 치중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의할 점이 있어. 창의성이라는 말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자칫 글의 흐름과 상관없는 아이디어를 집어넣기 쉬우니까 조심해.”
“주변에서 일어난 잡다한 기록, 자기만 잘 알고 있는 개인적인 관점이나 경험을 뛰어넘으란 말이야. 이미 한 걸로 아는데? 자신만 할 수 있는 주장이 필요하다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에 불과하다’, ‘치졸한 발상이다’, ‘국회의원에게 묻고 싶다’와 같은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곤란하지. 이런 어투는 논리보다 감정에 호소하고, 독선적이 될 위험이 있으니까.”

"‘~해야 한다’, ‘~해서는 안 된다’, ‘~는 밝은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다’는 식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려들 필요도 없어. 결과가 그렇게 뻔하거나 당위적이라면 재미 없잖아. 채점하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서 논술 답안지를 읽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글이 반드시 수준이 낮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매력적인 글도 아니야.”

“결국은 글을 써야 하는 문제니까 어법도 생각해야겠군.”
“잘 아네. ‘법률을 준수한다’와 ‘법을 지킨다’는 어떻게 다르지?”
“‘형식적(공식적) 어법’과 ‘비형식적(또는 속어) 어법’의 차이지 뭐야. 속어체의 아래 단계가 은어라는 거지?”

“하나 더 있어. 가식적인 어법(pretentious diction)이야. 어법의 여러 단계 중에서 마지막 것이지. 쓰는 사람이 겉치레로 과장하거나 독자를 압도하려고 고심한 자국을 일부러 남기는 거야. 춘부장께서는 금일 아침에 회사에 출두하셨다, 그런 거 말이야.”

“우리 삼촌께서 금일 아침부터 등산을 간 것은 아니신가? 설마 이런 추위에?”
“아름다운 표현이 아니라 의도적인 전달이 우선이야. 말로 따질 때 따라야 할 말의 이치, 그게 논리야. 감성적인 글이 아니라 이성적인 글을 요구하는 거지. 자기 생각에 근거를 대서 남을 설득하는 것, 달리 말하면 주관의 객관화 작업이라고 하지.”

“삼촌께서 얼음산에 가셨더라도 산의 법을 준수하고 계실 테니 저는 이만 주무시겠습니다.”
“감각적인 표현은 피하고, 공식적인 내용을 담으려고 애써. 그런데, 단순히 서론, 본론, 결론을 잘 구분해 쓰라는 말은 아니라는 점도 잊지 말고.”

이천저널
이천저널
webmaster@icjn.co.kr
다른기사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