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서의 이것이 수리 논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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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서의 이것이 수리 논술이다
  • 이천저널
  • 승인 2006.12.0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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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 논술이란 무엇인가?

최준서의 칼럼 <발목 잡는 공부에 날개 달기>에 많은 성원 보내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번호부터는 적성과 학습이라는 일반적인 주제에서 좀 벗어나 4회에 걸쳐 수리 논술에 관한 특집을 싣고자 한다. 그 까닭은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입시철을 맞아 조급한 대입 준비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천저널에서는 겨울 방학 기간 동안에 이천 지역 고등학생(예비고 포함)들을 대상으로 한 논술 강좌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으로 있으며, 이 지상 강좌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 필자로부터 직강을 들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20년 전 필자가 대학을 들어갈 때도 논술 시험을 보았다. 하지만 그때의 논술 시험은 지금과 달리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기준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반면 요즈음의 논술 시험은 해가 갈수록 당락의 주요 변수가 되어가고 있다. 지난 9월, 서울대가 발표한 2008학년도 입학 전형 주요 사항을 보면 수학 능력 시험 성적으로 정원의 3배수에 해당하는 학생을 선발하고, 이후 학생부와 논술, 면접 시험을 통해 최종 당락을 결정하겠다고 한다. 특히 수능성적을 최종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는 전형 요소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한 단계 도약한 논술 광풍(狂風)의 시절이 올 것만 같다.

수리 논술은 진정한 의미의 논술이 아니다

최근 대학들이 출제한 논술 시험을 살펴보면 크게 인문계와 자연계, 혹은 언어 논술과 수리 논술이라고 칭할 수 있는 두 가지 형식의 시험이 주를 이루고 있다. 대학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인문계는 언어 논술, 자연계는 수리 논술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문계와 자연계 모두 언어 논술형 문제와 수리 논술형 문제가 함께 출제된다. 다만 각 계열별로 문제의 비중이나 난이도가 조절되어 있다.

언어 논술은 서너 개의 제시문과 이에 대한 논거, 예시, 비교 등을 묻는 논제에 답을 하여야 하는 형태의 시험이고, 수리 논술은 수리적/과학적 개념과 원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과 연계된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학들의 목적은 과거의 정답 여부를 가리는 결과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학생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한층 더 요구하는 과정 중심 평가의 논술 시험을 통해 학생의 수학 능력(修學能力)을 좀 더 정확히 변별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하지만 언어 논술과 수리 논술이라는 용어에서 쓰인 그 ‘논술’의 의미는 좀 다르다.

현재의 중·고등학교 수준의 수학 공부는 수학 각 부문의 토대를 이루는 공리(公理)나 명제의 진실성을 일단 인정하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논술 실력이 필요한 수리 논술 문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것은 유클리드기하학에서는 의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지만, 대학과정에서 배우는 비(非)유클리드기하학에서는 180도가 아닐 수도 있다. 따라서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도임을 증명하시오’라는 문제는 가능하지만, '내각의 합이 180도가 아닌 삼각형을 그려 보시오’처럼 기본공리의 진실성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 문제는 고등학교 학생수준에서 이해 가능한 개념이나 원리(구면기하학 등)를 제시문에 포함하여 출제된다.

따라서 수리 논술은 ‘논술력’보다는 학교에서 이미 배운 수리적 개념과 원리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와 다른 학문과의 상호 관련성에 대한 사고력과 응용력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수리 논술 문제의 세 가지 유형

수리 논술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개념과 원리를 즉각적으로 평가하는 형태로 수학 시간에 배우는 응용 문제와 유사하다. 예를 들어 ‘어느 날 밤, 지구를 파괴하려는 목적을 가진 외계인들이 삼각형 모양의 우주선을 타고 철수네 앞마당에 착륙하려고 한다. 평소 운동을 많이 해서 아주 아주 힘이 센 철수가 용감하게도 착륙하는 우주선을 밑에서 들어서 던져 버리려고 한다. 이때 철수는 우주선의 어디를 들어야 할까?’ 같은 식의 문제이다.

두 번째 형태의 문제는 문제와 풀이 과정을 함께 제시하고 풀이 과정 중에 사용된 개념이나 원리의 검토나 재설명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위의 문제를 고쳐보면, ‘어느 날 밤, 지구를 파괴하려는 목적을 가진 외계인들이 삼각형 모양의 우주선을 타고 철수네 앞마당에 착륙하려고 한다. 평소 운동을 많이 해서 아주아주 힘이 센 철수가 용감하게도 착륙하는 우주선을 밑에서 들어서 던져 버리려고 우주선의 무게 중심쯤으로 보이는 곳을 들었다. 그런데 위치를 잘못 짚어서 그만 우주선에 깔리고 말았다. 우주선이 어떤 삼각형이면 철수가 좀 더 쉽게 무게 중심을 찾을 수 있을까?’ 같은 식의 문제이다.

세 번째 형태의 문제는 수리적 개념을 물리학이나 지구과학 등과 연계한 것이다. 다시 위의 문제를 고쳐보면 ‘어느 날 밤, 지구를 파괴하려는 목적을 가진 외계인들이 삼각형 모양의 우주선을 타고 철수네 앞마당에 착륙하려고 한다. 평소 운동을 많이 해서 아주아주 힘이 센 철수가 용감하게도 착륙하는 우주선을 밑에서 들어서 던져 버리려고 한다. 철수가 지구를 구하기 위해 감안해야 할 것들을 서술하시오’ 같은 식이다.

수리 논술은 개념과 원리로

물론 실제 수리 논술 문제는 위의 문제보다는 좀 더 어렵지만 대략의 유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수리 논술에서 출제되는 문제들은 정답이 있는 것도 있고 정답이 없는 것도 있다. 하지만 교과서 밖의 공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없다. 정해진 정답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 평소의 수학 시험과 다른 점인데, 이때에도 학생 특유의 상상력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관련 개념과 원리를 사용하여 서술형의 답안을 작성하면 된다.

서술에 필요한 논리를 이미 배운 개념과 원리에서 도출해야 하므로 ‘자신만의 주장’이 삽입될 수 있는 언어 논술과는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괜스레 ‘수리+논술’이라는 말을 만들어내서 안 그래도 수학이라면 몸서리를 치는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공포만 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더군다나 여기에 편승해서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수리의 ‘논술’을 ‘완전 정복’까지 하게 해준다고 주장하는 훌륭하신(?) 분들이 학원가에 이미 많이들 계신다고 한다.

하지만 기존의 공식 외우기 방식에서 개념과 원리 중심으로 수학 공부를 변화시키고 있는 점에서 수리 논술의 긍정적인 영향도 적지 않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공식을 외우다 지치고 문제를 풀다가 지친 우리 학생들이 새롭게 수학 공부의 재미를 느끼고 관련 분야에의 응용력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면 참 좋은 일이다.

스스로 원리를 깨치는 자가 진짜 논술왕이다

필자가 보기에 앞으로 대학들은 가능한 사교육에 좌지우지되는 대학 입시의 병폐를 막고자 나름대로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논술 시험도 갈수록 개념과 원리 위주를 중시하는 형태로 더욱 변할 것이다. 그럼 왜 개념과 원리 위주의 공부가 유능한 과외선생님을 괴롭게 만들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해보자. ‘삼각형의 무게 중심’이란 개념은 어디서 누구에게 얼마의 대가를 주고 배우는가와 상관없이 항상 똑같다. 지구상에 그 누구도 특별하고 비밀스런 자신만의 ‘무게 중심’ 개념을 갖고 있을 수는 없다. 아인슈타인이 와서 가르친다고 해도 현재 우리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보다 더 잘 가르칠 수는 없다.

그럼 혹시 그 ‘개념’이란 것을 머리에 쏙 들어오게 잘 가르치는 학원이나 과외선생님을 찾아가면 어떨까? 개념이나 원리가 완전히 자기 것이 되는 순간은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가끔씩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퀴즈를 내는 경우가 있다. 퀴즈를 낸 친구는 미소를 짓고 퀴즈를 받은 친구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문제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거의 문제가 풀릴 듯 말 듯 실마리가 잡힐 듯 말 듯 하는 바로 그 순간에 퀴즈를 낸 친구가 “야, 이것도 못 풀어? 잘 봐 이건 이렇게 푸는 거야!”하고 덜컥 답을 말해버리면 퀴즈를 풀려고 노력하던 친구의 기분은 어떨까? 그야말로 화가 폭발할 것이다. 모두가 한 번쯤은 겪어본 일일 것이다.
수학이나 과학 분야의 개념이나 원리를 익히는 과정도 퀴즈를 풀 때와 아주 비슷하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통해 여러 가지 문제도 풀어보고 막히는 부분은 다시 책을 통해 복습하면서 친구가 낸 퀴즈를 풀 때와 비슷하게 알 듯 말 듯, 머릿속이 간질간질한 상황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그 개념 그 원리가 내 몸 속으로 깊이 들어오는 기분 ‘아, 바로 이거구나!’하는 경험을 많이 한 학생이 진짜 논술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자기 앞에, 모든 문제의 답을 기가 막히게 척척 설명해 주는 요술 선생님이 있으면 어떻게 될까? 그 학생은 ‘개념과 원리’하고는 영영 이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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