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구의 우리말의 멋과 맛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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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구의 우리말의 멋과 맛 <3>
  • 이천저널
  • 승인 2006.12.0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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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도둑눈

지난달 끝날 오전, 수도권 지역의 휴대전화 통화량이 갑자기 늘어났다는군요. 한 회사의 경우 음성 통화량이 30퍼센트, 문자 메시지 사용량은 50퍼센트가 증가했답니다. 왜냐고요? 첫눈이 왔기 때문이랍니다. 첫눈 온 소식을 특별한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그 마음들이 예뻐 보입니다.

강원 산골에는 제법 잣눈(한자쯤 내린 눈)이 쌓였다는데, 풋눈(첫겨울에 들어서 조금 내린 눈)인 곳도 많았겠지요? 눈에는 내리는 때나 굵기, 내린 양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들이 붙었습니다. 밤에 오면 밤눈이고 봄철에 내리면 봄눈이지요. 한꺼번에 많이 내리는 눈은 소나기눈, 매우 잘게 내리는 눈은 가랑눈, 함박꽃처럼 굵고 탐스럽게 내리는 건 함박눈, 눈비가 섞여 내리는 눈은 진눈(진눈깨비)이라고 부릅니다. 죽죽 줄을 그리는 것처럼 내리면 눈발이라고 하고 센 바람에 날리어 세차게 내리는 걸 눈보라, 내리는 건 아니지만 쌓인 눈이 말의 갈기처럼 흩날리는 눈보라는 눈갈기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살짝 얇게 내린 눈은 살눈, 한 자쯤 내린 건 잣눈, 거의 한 길 되게 쌓인 건 길눈입니다. 엉기어 송이가 되어 내리는 걸 눈송이, 나뭇가지에 내려 꽃처럼 보이는 걸 눈꽃이라고 하지요. 눈이 내릴 때에는 기화열 때문에 실제 기온도 덜 추울 뿐더러 사람들의 마음도 따뜻하게 해 줍니다. 하얗게 눈 덮인 산천을 바라보면 누구라도 아련하거나 애틋한 추억 한 토막을 잠시 떠올리기 마련이지요. 그렇지 않은 사람 보셨나요?(김창식 씨? 그 사람 빼고!)

눈이 주는 감탄사로서 압권은 아무래도 도둑눈(밤 사이에 내린 눈)입니다. 올 겨울에는 이른 아침 숫눈(내린 뒤 아무도 밟거나 더럽히지 않은 깨끗한 눈) 쌓인 동네 골목을 가만가만 걸어 보는 행복을 모두 누려 보세요. 옛 시 한 편 읊조리며 말입니다.

눈 쌓인 들판을 걸어갈 때에는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걷는 나의 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이 되리니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 서산대사
(프리랜스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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