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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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
  • 이천저널
  • 승인 2006.12.0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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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귀신이 도와주겠다고 한다면...

   
『어리석은 농부와 귀신들의 합창』

나세르 케미르·엠레 오른 지음 / 이효숙 옮김, 솔 출판사(2003)

“선생님, 귀신이야기 해 주세요. 네?”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종종, 아니 나와 함께 하는 논술 시간마다 한번쯤은 내게 귀신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른다.

“글쎄.”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야기를 꺼낼 듯한 태도를 보이면 아이들은 정말 숨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히 눈을 반짝인다. 누군가로부터 이런 ‘집중 조명’을 받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어릴 때 할머니로부터 들은 귀신 얘기는 이미 바닥이 났고, 카프카의 『변신』 같은 소설을 공포 이야기로 각색해 들려주던 꾀도 도 끝이 났다.

‘아이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귀신 이야기를 좋아하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나는 내가 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며 찾았다. 할머니 무릎에 무릎을 맞대고 앉아서, 듣고 또 들어도 재미있고 무서웠던 그 얘기들, 그 괴이한 마을의 전설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는 비교육적이다”는 의견은 무시하고 시립도서관에서 새로운 귀신 이야기 하나를 건졌다.

멀고 먼 아랍의 한 지방에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오늘 저녁밥을 먹으면서 내일 아침거리를 걱정해야만 하는 이 농부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거라고는 오로지‘가난’뿐이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이 농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거리를 찾아 헤맸지만 별 뾰족한 수가 생기지 않는다.

농부는 그래서 마을 입구에 있는 금지된 땅인 ‘귀신들의 밭’에 운명처럼 발을 들여 놓는다.
“만약 귀신이 도와주겠다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시덤불과 잡초로 뒤엉켜있는 너른 밭에 아주 작고 작게 그려진 농부가 잡초를 뽑아들기 시작하자, 땅속에서 깊고 웅장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도와줄게 기다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대한 밀랍 인형 같은 귀신이 나타나 눈 깜짝할 사이에 밭에 나있는 풀을 뽑아버린다. 

풀을 뽑고, 돌을 골라내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할 때마다 귀신들이 나타나서 일을 손쉽게 해치운다. 귀신들은 사람이 하는 일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또 그때마다 귀신들의 수는 반드시 두 배로 늘어난다.

중간에 책 읽기를 멈추고 “귀신들이 이제 몇 명이 나타날까?” 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열심히 손가락을 꼽다가 “와, 우”하며 걱정을 한다.

이제 귀신들의 밭은 황금 밀이 물결치는 밭으로 변했다. 얘기의 순서대로 농부는 병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되고, 새들이 밀알을 쪼아 먹을까 걱정이 든 농부는 어린 아들을 불러 신신 당부를 한다.

“누가 뭘 하냐고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마라!”

진작부터 귀신의 밭에 나가보고 싶었던 어린 아들은 새들을 쫓기 위해 탬버린을 손에 쥐고 밭으로 달려 나간다.

그 뒤 어린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여곡절 끝에 그 귀신들은 아들을 잃은 농부와 그의 아내를 따라 통곡합니다.

농부와 그의 아내, 귀신들의 눈물이 흐르고 넘쳐 마침내 밭은 ‘귀신들의 강’으로 변합니다.

지금은 강이 되어버린 그 곳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은 이따금 이런 소리를 듣고는 한답니다.

무슨 소리일까요? 물결이 일렁이는 소리일까요?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침묵하고 있던 아이들은 그때서야 저마다 큰 소리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답니다.   

길일행/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나왔다. 방과 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글쓰기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엄마는 4학년』, 『아이들은 무엇으로 사는갱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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