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서의 발목 잡는 공부에 날개 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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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서의 발목 잡는 공부에 날개 달기
  • 최준서
  • 승인 2006.11.30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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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 좀 쉬었다 가시죠!

얼마 전 미국과 중국에 유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 중에서 한국인이 제일 많다는 뉴스보도를 보았다. 인적자원이 거의 유일한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을 볼 때 먼 타국까지 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꾸준하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특히 요즈음은 영어공부를 좀 더 일찍 좋은 환경에서 해 보고자 중·고등학교 학생들에 이어 초등학교 연령의 학생들까지 해외유학과 어학연수 길에 나선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때로는 외국현지의 어학연수일정에 맞추고자 재학 중인 학교의 방학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서둘러 영어 공부 길에 오르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 역사적 연유가 어찌되었건 영어가 사실상의 세계 공용어가 되다시피 한 것은 거의 기정사실인 듯싶다. 이제 지구상에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보다 영어를 비모국어로 배워서 쓰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또한 지구촌 각종정보의 집합체인 인터넷에서도 영어로 작성된 정보가 70%~80%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초등학교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고 과외로 각종 사설학원에서 영어를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아마도 학부모들의 바람은 아이가 다국어를 구사하게 되어 삶이 좀 더 윤택해지고 사회생활 중에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이런저런 경쟁에서 좀 더 유리해지길 바라는 것이리라.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해서야 겨우 알파벳을 익히고 ‘I am a boy.’, ‘I am a girl.’을 따라 읽으며 영어를 시작했던 우리 같은 학부모세대들에게는 요즈음 같은 급격한 교육환경의 변화가 종종 당황스럽고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외국어를 일찍 배우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일까?

몇 해 전 필자는 한 선배의 소개로 어느 한국계 미국인 친구를 소개받은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중학교 시절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고등학교와 대학공부를 마치고 모 항공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일상적인 한국어에는 막힘이 없었지만 약간의 추상적인 대화, 예를 들면 ‘나이가 들면 아이처럼 된다는데 정말 그럴까?’, ‘이 문제는 아무래도 관점을 바꿔서 다시 논의해 보자!’ 같은 대화에 필요한 표현은 우리말로 잘 해내질 못하였다.
나중에 듣게 된 그 친구의 고백에 의하면, 자신은 미국인들과 업무를 하거나 교제 중에도 때로 비슷한 답답함을 느낀다고 하였다.

이 친구를 만난 이후로 간간히 만나게 되는 소위 다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과 교류할 때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의 언어와 사고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점은 대부분의 사람은 한 가지 언어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무려 5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스위스인도 있었는데 그 역시 기본적인 사고는 한 가지 언어로 하고 있었다.

물론 모국어와 외국어를 계속 함께 사용하다 보면 일상적인 생각이나 표현이 비교적 자유롭게 넘나들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장기에 모국어를 통해 습득되고 발전된 사고의 틀과 사고능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람은 보통 사춘기를 겪으면서 감성이나 지성이 폭발적으로 변화하고 발달하게 되는데 이 시기를 전후해서 만일 급격하게 언어환경이 바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그 학생은 그 어느 쪽 언어로도 자신이 평생을 계속해 나가야 할 학문과 업무에서 필요한 고급한 사고력을 갖지 못하게 되지는 않을까? 근래에 교육학이나 심리학분야 등의 전문가들이 섣부른 조기외국어학습에 대해 지적하는 부작용도 주로 이런 것들이다.

사춘기에 해당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발달되는 사고력을 예를 들어 살펴보자. ‘우주’라는 단어는 본격적으로 추상하는 능력이 발달되기 이전에는 ‘universe’라고 옮기면 틀리지 않다. 하지만 한국어와 영어를 각각 모국어로 하여 사고력을 키운 두 학생사이에는 언뜻 쉬워 보이는 이 단어들이 그 용례(用例)와 연상(聯想)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 우주 ; 우(宇) 동서남북상하, 주(宙) 과거현재미래, 시간과 공간, 천지, 만물의 모태(母胎), 심적(心的) 광활(廣闊), 하늘의 도리(道理), 태극(太極), 무극(無極)...
* universe ; 에너지와 물질을 포함하는 모든 공간, 질서정연한 계(界), 은하계(銀河系), 모든 사람, 영역, 영토, 소유지(所有地), 호기심, 취미...

이처럼 나의 ‘우주’는 You의 ‘universe’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해외유학의 적절한 시기는 언제일까? 언제쯤이면 나의 ‘우주’ 속에 You의 ‘모든 universe’를 담아 낼 수 있을까? 필자는 학생들이 한국어로 일정수준의 사고의 틀과 능력이 구비되는 고등학교나 대학이후가 좋다고 본다. 그래야만 타언어와 타문화로 이루어진 학문의 추가적인 공부가 진정한 다국어이용의 상승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섣불리 결정적인 시기에 생각의 기준이 되는 언어가 뒤바뀌는 환경에 던져진(?) 학생은 자칫 평생 생각의 절름발이가 되고 말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주를 두개나 잃어버린 채…….

우리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정보가 갈수록 많아지는 시대에, 정보를 좀 더 효율적이고 창조적인 형태로 재생산해 내는 능력은 각각의 정보가 어느 나라 말로 쓰여 있는가 하는 것보다 과연 정보를 그렇게 처리할 수 있는 ‘사고능력이 나에게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필자는 현재 우리나라 각급학교에서 진행하는 수준의 외국어교육정도라면 앞으로의 시대에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는 데에 별 무리가 없다고 본다. 정규교육과정을 생략하거나 미루면서까지 무리하게 장·단기의 외국 어학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결과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학생의 진로와 자질에 따라 부족한 부분을 메우거나 추가로 필요한 부분을 더할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우리말로 더 잘 생각하고 그 생각을 더 잘 표현해 내는 공부를 단절 없이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공부환경을 우리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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