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쌀의 명맥을 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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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쌀의 명맥을 이어가자
  • 오흥재 마장농협 전무
  • 승인 2006.11.30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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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쌀은 우리의 주식이었지만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흰 쌀밥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았다. 춘궁기 보릿고개로 상징되는 어린 시절, 하얀 쌀밥에 고깃국을 먹어 보는 소원은, 그나마 1년에 한번 돌아오는 생일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분식이 건강에 좋다는 구호 아래 국수, 빵 등 밀가루 음식 먹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던 시절도 있었다. 또한 보리, 콩 등이 섞인 잡곡밥도 적극 권장하였고 심지어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해 흰 쌀밥을 싸오는 아이들을 나무라던 때도 있었다. 모두가 주식인 쌀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숱한 세월동안 전통처럼 이어져 내려온 이른바 보릿고개 고통은 좀처럼 사라질 줄을 몰랐다.

근근한 살림에 겨울과 봄을 나는 사이, 식량은 거의 바닥이 나고 오직 보리 여물기만 기다리며 굶주린 배를 달래야 했던 시절. 이 보릿고개의 고통이 사라진 것은 불과 30여 년 전인 70년대 초부터 통일벼 대량재배로 쌀 수확량이 크게 늘어나면서부터다. 통일벼는 대단한 다수확 품종의 벼로 당시 정부가 정책적으로 개발한 벼였다. 훅 불면 날아갈 정도로 물기가 없고 맛이 떨어졌지만, 이 통일벼 덕에 비로소 우리 국민은 기아에서 해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어느 정도 허기를 면하게 되자 그때부터 통일벼는 맛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게 되었고, 결국 기아 해방에 공이 컸던 통일벼는 80년대 초반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쌀은 누가 뭐래도 여전히 우리 농업의 기둥이요, 대들보이자 주식이다. “밥심으로 산다.” 이 말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다. 쌀 수요량은 점차 줄고 있지만, 밥은 여전히 한국인의 식생활에 중심이다.

우리나라의 벼농사는 이미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1천년이 훨씬 넘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당시에는 귀족들이나 먹는 고급식품이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쌀이 차지하는 경제적, 정치적 위치는 뚜렷했으며, 물가의 기준이나 녹봉의 대상이 되는 등 국가 경제에서 귀중한 위치를 차지했다. 물건 값을 계산할 때도 쌀 몇 가마니로 따지기도 했다.

이제 개방화 세계화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식량 문제는 국가 간에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농업 정책도 시장 원리에 따라 변해야 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쌀이 생산되어야 한다. 소비자는 쌀을 구입할 때부터 가격, 맛, 안전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요즘 쌀 문제를 보면 미래를 내다보는 농업정책이 없다. 농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주고 급격한 변화로 인한 충격을 완화해 줄 수 있는 슬기로운 농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방 특산물인 우리 이천 쌀 문제도 시장 경제의 논리로 뚫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조선시대 임금님께 올렸던 진상품인 이천 쌀도 이제는 우리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원리에 따라 그 생존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쌀 정책이 과거 정부 주도적인 추곡 수매 정책에서 시장 지향적인 정책으로 바뀜에 따라 농협의 역할이 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천 쌀의 건조, 가공, 유통의 주체가 되는 농협의 미곡종합처리장은 ‘임금님표 이천 쌀’의 가격을 든든히 지켜줄 만큼 수익성과 공공성을 겸비한, 믿음직한 쌀 판매 처리 기능의 주체가 되기 위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 험난한 듯하다. 많은 미곡종합처리장이 경영상의 어려움, 시설노후, 공장 가동 일수부족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천 쌀의 건조, 가공, 유통 문제 해결이나 개선을 위해서는 농협 자체의 노력뿐만 아니라 지자체 소비자 그리고 농업인의 협력도 필요하다. 정부나 지자체는 농협이 자율적으로 제 기능과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시장 환경을 조성하고, 홍보나 가공, 건조, 유통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책도 있어야 하겠다. 또한 우리 쌀 소비 확대를 위한 학교나 사회단체, 소비자 단체의 협조도 절실하다. 아울러 농협은 조합원을 위한 농협으로, 타 지역의 저가미 공세에 슬기롭게 대응해 판로 확보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서 미곡사업의 경영을 개선하고 혁신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으로 합리적인 산물벼 수매 제도 마련과 수매 가격도 생산자가 공감하는 매입가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농업인의 현명한 판단이다. 수확기에 무조건 높은 쌀값의 “좀, 더” 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농업인들은 적절한 쌀값 지대미 생산에 소요되는 제조 원가(산물벼 수매가격에 제품가공비용, 금융비용, 감가상각비, 수매제비, 인건비 등)를 참고하여 대승적 차원에서 협력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농협의 농산물 판매 처리 기능이 강화되고, 미곡 사업이 정상적으로 발전해 나갈 길이 보인다. 농업인이 농협의 미곡 사업을 살려야, 농협이 우리 이천 쌀 농업의 미래를 선도할 수 있다. 이제는 각 지방마다 쌀의 품질을 개선하고 이미지 재고를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이 앞 다퉈 쌀의 기능성을 다변화하며 발 빠르게 앞서 가고 있다. 전통적으로 최고의 미각을 자랑하던 우리 이천 쌀도 지역의 농업인과 농협이 합심 단결하여 지역 특산물의 경쟁력을 높여 그 진상품의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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