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는
구겨진 몸뚱이로 당당하게
허리 펴며 고개 들고 살았건만,
텅 빈 하늘 끝자락에
위태로운 울타리만 남겨 놓았다.
하루 품삯도 안 나오는
추곡 수매를 마치고
울컥울컥 뜨거운 가래 넘기지만,
바람 부는 대로 발 딛는 대로
뒷산 까치가 우는 탱자나무로 살았다.
에미는
앙상한 울타리 아래에서
새끼 배 소보록하게
메마른 젖 쥐어짜며
노을이 수몰되는 어스름 길에서
시처럼 투명하게 한 마디 남기고 떠났다.
“미안하데이~.”
어느새 나도
그 긴 어스름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렇게 저녁 하늘은 짙붉게 흘러내린다.
=글, 사진 : 신배섭(문학박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