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인들의 생활 모습은 우리나라의 60, 70년대 생활 모습과 비슷하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GNP는 약 400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생산 기반 시설과 가공 시설이 부족해 현재 외국에서 많은 투자를 하려고 많은 나라들이 앞다투어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2005년에 비해 생활비와 물가도 거의 3배 수준으로 오른 상태다.
이곳 사람들의 주식은 따듯한 차와 레펴시까(논)라고 하는 빵을 주식으로 하고 있다. 레펴시까는 흙으로 만든 커다란 화덕에 불을 지펴 그 안에 밀가루를 반죽하여 벽에 붙여서 만든 빵으로 끼니때 빵을 만드는 곳에 가면 따듯한 빵을 150숨(1달러에 1260숨 정도)에 바로 사서 먹을 수 있다.
우리 봉사단은 매일 아침 거의 빵과 과일을 먹었다. 그래서 인지 아직도 레펴시카의 구수한 맛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과일은 태양의 나라, 사막성 기후, 여름 강수량이 거의 없는 관계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있다. 그 중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먹은 것은 3~4Kg 정도 되는 멜론과 당도가 무진장 높은 수박이다. 또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수시로 먹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면 하루에 1.5리터들이 물을 3개정도 마시지만 이상하게도 화장실을 거의 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40~5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에 땀으로 다 배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사단에게도 갈증을 물로 해결하지 말고 과일을 충분히 먹어 땀으로 배출되는 수분을 보충하라고 일렀다.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우즈베키스탄에 이주하여 살고 있는 고려인들의 생활은 고려인 1세대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어느 정도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후손들은 내가 무엇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심에 빠져있다. 그래서 우리 봉사단은 그들에게 용기와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도 같이 이야기 해 주었다.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국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거리에 돌아다니는 자동차의 70%가 한국산 자동차들이다. 그리고 한국어를 할 줄 알면 한국 기업과 또 한국에 취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어에 대한 인기가 매우 많다.
우리 봉사단은 바자르(시장)에서 쌀과 감자, 양파, 파, 마늘 등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구하고 한 달간의 봉사기간 동안 직접 밥을 해 먹었다. 우리가 미리 준비해 가지고 간 김치와 김, 통조림 그리고 고추장 등은 매우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고추장은 레펴시카에 찍어 먹으면 의외로 맛있고 깔끔하면서 더운 날씨에 입맛을 돋우고 더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곳 학생들과 학교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도 주었더니 맨 처음엔 맵다고 하면서 그 다음부터 또 달라고 했다. 또한 김은 이곳 사람들이 처음 접하는 음식으로 무엇으로 만들었냐고 하면서 가장 인기가 있는 음식이 됐다.
우즈베키스탄의 대표적인 바자르(시장)은 생필품이 많고 과일도 많다. 고려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 근처에 가장 큰 철수 바자르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음식물들이 있는 꿀육 바자르, 보석류와 일반 시장 형태 그리고 옷 종류를 살 수 있으며 근처에서 한국으로 국제 전화를 쉽게 할 수 있는 알라이스키 바자르, 숙소 근처에 있으며 간단한 부식과 근처에서 한국 물건들을 살 수 있는 가스피탈 바자르 등 지역별 다양한 형태의 시장들이 있다.
이곳에서 또 불편하면서 재미있는 것은 화폐 단위가 10, 50, 100, 200, 500, 1000숨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은행 또는 환전소에 가서 100달러 정도를 200숨짜리로 환전을 하면 6천3백장을 받게 된다. 그러니 100장 묶음(2만숨)으로 되어있는 뭉치 돈이 6개 이상을 받기 때문에 그 뭉치 돈을 넣을 가방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방이 두둑하다 보니 마음도 넉넉해진다. 그러나 시장이다. 음식점에 가서 계산을 할 때는 갑자기 뭉치 돈들이 쑥쑥 빠져 나가는 느낌을 갖는다. 그러면서도 돈의 소중함을 느끼고, 계산하는 즐거움도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은행보다 환전소를 물어보았더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달러를 갖고 있으며 필요할 때 우즈베키스탄 돈으로 환전을 한다. 은행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환전한 돈은 다시 달러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봉사단은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는 고려인 학생인 안 아르쫌과 차 엘레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고려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음식을 해 먹는지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우리는 꽃을 사가지고 집을 방문해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점심에 초대를 받았는데 저녁 시간까지 음식이 여러번 바뀌면서 후식으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부모님들은 우리들에게 맛있게 많이 먹으라고 하면서 상을 같이 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손님들이 맛있고 편안하게 많이 드시라는 이유로 자리를 같이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한다.
한국에서는 부모님과 같이 식사를 한다고 하면서 자리를 같이 하자고 했더니 약간 불편해 하면서 마지못해 앉으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식사는 거의하지 않고 음식이 모자라지 않나 차려진 상을 여기저기 살펴만 보셨다. 손님들을 맞이하는 모습과 풍성하게 차려진 음식상을 보고 우리 조상들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식사 후 우리는 설거지를 같이 하면서 한국인들의 정을 전해 줬다. 나는 숙소에 와서 봉사단원들에게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나보다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나 자신을 이렇게 키워 주신 부모님께 항상 감사해라”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좀 더 성숙된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 또한 한국에서의 생활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