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라는 한 마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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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라는 한 마디 말
  • 이천증포중 교사 전세은
  • 승인 2007.08.1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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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학기 중을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풀리지 않는 숙제, 밀린 고민거리가 커다란 산만큼의 짐이 되어 머리에 꽉 채워진다. 요즘 나는 이 가운데 교사의 역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수업 내용을 잘 전달하는 것, 생활지도를 잘 하는 것은 교사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역할이다. 그렇지만 이제 걸음마를 겨우 뗀 아이와 같은 나에게는 교단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직까지 상당히 벅차고 떨리기만 할 뿐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학생들은 질문으로 나를 종종 애먹이곤 한다.
  나는 담임으로서 학생들에게 틈날 때마다 학교 규정에 대해 훈화도 하고 이에 따라 학생들을 점검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지키지 않은 학생에게는 협박 혹은 회유를 통해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자주 하는 말이 “왜요?”이다. 어떠한 보석 같은 가치라 하더라도 학생들이 수긍하지 않는다면 기성세대가 강요하는 진부한 잔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문득 나름대로 학생과 함께하는 교직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리고 수업 내용을 설명할 때나 조·종례시 훈화를 전달할 때 나의 유창한 말하기에 나름대로 만족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학생들의 “왜요?”라는 한 마디 말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입이 쩍 붙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두발 검사를 하는데 한 학생이 “왜 머리를 잘라야 하죠?”하고 물을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그건 학교 규정이기 때문이야”라고 얘기를 하고, 다시 그 아이는 “왜 학생들은 원하지 않는 것들이 규정이 되었나요? 도대체 머리를 기르면 뭐가 나쁜 거죠?”라고 되묻는다. 이 때 나는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그리고 학생의 말에 반론할 수 있는데 그게 마음먹은 대로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어쩌면 처음부터 불필요한 규정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단지 내가 학창 시절에 의문 없이 받아들였던 부분이기에 정서상 이 아이들에게도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문도 해 본다.


  사실 나도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들의 말씀에 하품부터 하던 학생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강요(어린 마음에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이 전부였으며, 그 때에는 교사와 학생 모두 암묵적으로 “왜요?”라는 말도, “왜냐하면”이라는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어렴풋하게 숨겨진 의미가 머리에서 실타래 풀리듯 모르는 새 풀렸던 것 같다. 결국 학창 시절의 마지막 발걸음을 등 뒤에 두고서야 잔소리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깨우쳤던 것이다. 


  교사는 학생과 인간적인 만남 이전에 ‘사회화’라는 학교의 중요한 역할을 떠맡고 있다. 그런데 교사와 학생이 일대 다수이기에 중요한 내용이 미흡한 방법으로 전달되었던 것이다. 막상 사회에 젖어들면 들수록 학교에서 배운 것이 결코 허튼 것이 아님을 바로 체감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나 역시 학생 시절에 이해하기 어려웠듯이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이해시키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학교에 돌아가면 학생들은 망설임 없이 “왜요?”라는 말을 또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고개를 갸우뚱할 날이 올 것이다. 그렇지만 항상 학생과 함께 답을 찾아가도록 노력하고 싶다. “왜요?”라는 질문은 나를 당혹스럽고 힘들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로 하여금 교단에 서게 하는 커다란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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