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하의 청소년 사랑<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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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하의 청소년 사랑<4>
  • 박연하
  • 승인 2006.10.1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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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가 뻔한 청소년은 없다

우리 사회는 낙인찍는 것을 참 좋아한다. 한두 번만 같은 행동, 같은 모습을 보이면 이내 사람들은 “누구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야” 하고 단정을 지어버린다. 때로는 그런 성급한 단정이 그럴 듯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다양한 내면을 가진 사람을 몇 개의 단편적인 인상만으로 전체의 모습을 단정 짓는 것은 매우 성급한 일이다. 하물며 상대가 앞날이 구만리같이 남아 있는 청소년이라면 어떨까? 싹수가 노랗다느니 파랗다느니 말할 수 있는 자격을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함부로 말하지 마라. 자기 자식이라도. 

혜영이는 몇 년 전 부모님이 이혼을 해 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같이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대부분 전문대학이라도 가기로 결정했지만 혜영이는 4년제 대학을 가고자 재수를 하기로 했다. 사귀던 남자 친구하고도 헤어지고 대학도 떨어지고 마음이 상한 혜영이는 친하게 지내던 진희네에 자주 가서 자고 오곤 했다. 하루는 저녁 무렵 진희네 갔을 때 일이다. 진희 엄마가 진희를 불러내 옆방에서 야단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혜영이랑 놀지 말라고 하지 않았니. 저 애는 남자랑 벌써부터 잠도 자고 그런 애야. 아주 앞날이 뻔하단 말이야.”

혜영이는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를 우연히 듣고서는 살며시 그 집을 빠져 나와 다시는 진희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진희 역시 혜영이가 그 날 말없이 사라진 것을 보고 미안해서 다시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

사실 혜영이가 그리 모범생은 아니었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자기 자식과 친하게 지내게 하고 싶은 친구가 아닐는지는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도 누군가의 인생을, 혹은 인격을 송두리째 단죄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그 일로 상처받은 사람은 정작 혜영이가 아니라 진희였다. 친구에 대해 그렇게 막말을 할 수 있는 엄마에 대해 근본적으로 신뢰를 잃고 반항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진이는 학교 다닐 때 문제아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담배 피고 매일같이 나이트클럽에 드나들고 집에 있을 때는 오로지 컴퓨터 게임에만 매달렸다. 어쩌다 부모가 야단을 치면 지갑을 훔쳐 게임방에 가서 몇날 며칠이고 게임에 미쳐 있곤 했다. 심지어는 집단적으로 한 친구를 폭행해 학교로부터 쫓겨나 전학을 다니기 일쑤였다. 그를 받아 주는 학교를 찾을 수가 없어 그의 부모는 지방의 숱한 학교를 돌며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가 있었다. 주변에서는 우진이 장래가 뻔하다고들 했다. 심지어는 우진이 아빠까지 버린 자식인 셈 치자고 했을 정도다.

대학 근처에도 못 가보고 문제만 일삼으며 끝날 것 같던 우진이.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비행의 일부로 하던 컴퓨터에서 나름대로 실력을 쌓아 모 중소기업에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팔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제 그의 부모는 우진이 덕에 말년 복을 받는다고 주변에서 부러움을 살 정도가 되었다. 여전히 놀기 좋아하고 친구들 좋아하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지만 이제 그러한 취향들은 비행으로 낙인찍히지 않는다. 오히려 호탕하고 친구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주변에서 인기도 많고 처가에서도 귀여움 받는 사위가 되었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더없이 좋은 아빠 노릇도 한다.

청소년기는 폭풍처럼 지나가는 것이다. 어떤 이는 그 폭풍에 집을 잃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잘 피신하여 가볍게 그 시기를 넘기기도 한다. 사실 그 폭풍은 너무도 위험하여 모든 것을 잃고 회복 불능의 상황으로 인생을 몰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결과는 살아봐야 아는 것이 아닌가. 설령 폭풍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그 후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더 굳어진 땅 위에 새롭게 무언가를 이뤄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함부로 청소년들의 현재 방황하는 모습만 보고 이러쿵저러쿵 단죄하고 미래를 예측하지는 말자. 그러한 부정적 예측 자체가 그들의 폭풍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인생의 방향을 잘못 이끌어가게 된다.

장래가 뻔한 청소년은 없다. 어설픈 점쟁이들만 있을 뿐이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인생의 비밀 앞에서 좀더 겸허하게, 청소년들의 삶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일이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때 폭풍 뒤에 찬란한 태양이 비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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