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하의 청소년 사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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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하의 청소년 사랑<3>
  • 박연하
  • 승인 2006.10.1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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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도대체 뭘 알아?”

1980년대 발표되었던 이미례 감독의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은 참 많은 화제를 뿌리며 청소년기의 위험성과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었다. 가출한 16세 비행소녀 유리를 다시 집으로 되찾아 오기까지, 유리 부모는 200일 간의 전쟁을 치른다. 그것은 핵전쟁보다 무서운 싸움이었다. 당시 영화 포스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어느 부모가 수렁에 건진 자식을 건져내려 하지 않겠는가. 서로 다른 능력 의지를 지닌 부모들이지만 마음만은 다 똑같다. 자식이 수렁에 빠져 있는데 두 다리 뻗고 지내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방황은 청소년들 마음 속에 혼자라는 외로움과 번민을 심어 주겠지만, 다시 한번 돌아보자. 그대들은 정녕 혼자인가?”

수현(가명)이는 초등학교 때는 공부도 잘 하고 얌전하고 엄마 말을 곧잘 듣던 아이였다. 그런데 중학교에 가서부터는 다른 애가 되었다. 수 차례 가출을 일삼더니 급기야는 연락이 두절되었다. 한번 두번 가출을 했다가 돌아올 때마다 수현 엄마는 반송장이 다 되곤 했다. 미친 여자처럼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가 지쳐 아이 옷을 손에 꼭 쥐고 울며 잠들곤 했다.
“엄마 더 이상 나를 찾지 마.”

이것이 수현이 엄마 핸드폰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하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도대체 엄마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묻고 싶어도 더 이상 볼 수가 없는 엄마는 이제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었다. 그동안 딸애에게 조금이라도 서운하게 한 일들이 후회가 되고 한이 되어 자신을 자책하고 또 자책하고 있다. 

차라리 자식이 어릴 때는 먹여 주기만 하면 잘 자랐다.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며 부모 노릇은 다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가 더 편하다고들 하고 사춘기 때보다는 제 신변 정리 하나 혼자 못하는 유아를 키우는 것이 더 쉽다고들 한다. 그만큼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갓난아기 때보다 더 전폭적인 관심과 배려가 필요할 때인 것이다. 아이와 부모 모두가 좀더 긴장할 것을 요구한다.

고민도 많고 해야할 공부도 많은 청소년기에는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다. 세상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고 특히 그동안 생활의 중심이었던 가족, 특히 엄마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하는 시기라서 부쩍 심리적인 거리가 멀어진다. 평소에 대화가 적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부족했던 부모 자식이라면 청소년기에 극단적으로 드러나 사이가 벌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곧잘 엄마가 도대체 뭘 아느냐고,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화만 낸다고들 불평이다. 맞다. 모든 부모는 자식들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고 세대간의 의식과 취향 차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다. 또 자기들 삶에 바빠 아이들의 복잡 미묘한 삶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중을 두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고를 당하거나 위험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달려올 사람은 친구나 애인이 아니라 엄마 아빠이다. 청소년들의 몸은 그들만이 것이 아니다. 못나거나 잘나거나 부모 몸의 일부이고 부모들 인생의 전부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이 자기 몸을 함부로 하거나 인생을 함부로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부모를 그렇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내가 수렁에 빠졌을 때 가슴에 나를 묻고 남은 평생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할 부모를 생각해 보자. 만약 자신을 학대하거나 막 살고 싶거나 한없이 세상을 향해 돌을 던지고 싶어진다면 청소년들이여, 단 한 번만 자식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엄마 얼굴을 떠올려보자. 그래도 스스로를 아무렇게나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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