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이대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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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이대론 안 된다
  • 양원섭 기자
  • 승인 2006.10.1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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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환경개선책,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보류’

기업과 관계 부처 이견 조정하는 능력 있는 지도자 아쉬워

지난 9월 29일, 정부의 <기업 환경 개선 종합 대책>이 발표되면서 하이닉스반도체(대표 우의제)의 이천공장 증설 문제가 ‘보류’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긴 추석 연휴가 끝난 지난 10월 10일, 하이닉스는 보란 듯이 ST마이크로와 합작으로 중국 장쑤성 우시시에 이천공장에서 ‘보류’된 300mm 웨이퍼 공장 준공식을 가졌다. 반면 열병합 발전소에 연구 개발 시설까지 모두 갖춘 이천공장의 1만 8000여 평의 부지는 8년째 잡초만 무성하다.

물론 이는 각각의 계획에 따른 별개의 사업이다. 하지만 국내 최적의 부지에서 8년째 ‘보류’된 사업이 중국에서 실현되었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은 크다.        

하이닉스는 지난 9월 26일, 세계 최고의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천 사업장에 300mm R&D 팹(Fab)인 ‘R3’를 개소, 효율성을 극대화했으며, 이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공장 증설을 위한 투자 계획을 이미 밝혀온 상태다. 팹은 반도체 등에서 일괄 생산 공정을 뜻하는 패브리케이션(Fabricatiom)의 준말. 300mm 팹은 하이닉스반도체만의 고유한 노하우로, 본격 가동될 경우 기존의 200mm 팹에서보다 약 2.5배의 생산량이 증가, 업계 최고의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주력 사업이다.

경기도와 이천시가 하이닉스의 공장 증설에 주목하는 것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하이닉스는 2010년까지 총 13조 5000억원을 투입 300mm 웨이퍼 라인 3개를 지을 계획이라고. 이것이 실행되면 연간 4조 5000억 원의 매출과 협력업체 3100개를 포함해 약 9000명의 고용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재경부의 <기업 환경 개선 종합 대책>에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수도권 규제 완화 다짐과 권오규 부총리의 ‘전향적 검토 지시’에도 불구하고 보기 좋게 제외된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재경부 실무진은 물론 환경부, 산자부 등 관계 부처에서도 모두 반대 의견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과연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인가?

하이닉스가 300mm 웨이퍼 공장 증설을 위해서는 수도권 지역 규제 완화가 필수다. 박병원 재정경제부 제1차관은 정부의 <기업 환경 개선 종합 대책>이 발표된 직후 가진 한 라디오 방송에서 ‘보류’의 이유로 두 가지 문제를 꼽았다. 그 하나가 “하이닉스는 자연보존권역과 한강 상수원보호권역에 해당되므로 굉장히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자연보전권역이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구분으로 ‘한강수계의 수질 및 녹지 등 자연 환경 보전이 필요한 지역’을 말하는데,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산자부는 공장의 신증설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또한 하이닉스 이천 공장은 수질 환경 보전법에 따라 팔당 상수원 특별 대책 지역 2권역으로 분류되어 구리와 납 등 19종의 중금속을 사용하는 시설이 들어설 수 없도록 금지되어 있으며, 수도법 제5조의 규정에 의한 상수원 보호 구역에도 속해 환경부의 엄격한 관리를 받고 있다. 이것이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자연보전권역은 이천을 포함해 가평, 양평, 여주, 광주 등 수도권의 32.7%로 동부에 집중되어 있어 이 지역 주민들은 규제 완화를 위한 정비 발전 지구에 자연보전권역을 포함해주기를 강력히 희망해 왔지만 결국 좌절됐다. 이 문제에 해 하이닉스 관계자는, “규제를 풀기 위한 가장 큰 문제는 환경 문제다. 공장이 증설되면 자연히 남한강 물을 쓰게 되는데 우리 회사가 사용하는 중금속 중에 구리 때문에 수질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자체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에 따르면 먹는 물 수준으로 정화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이미 나와 있다”며 환경 문제에 대해서 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박 차관이 든 두 번째 이유는 “경기도와 충청북도 간 유치 경쟁이 치열해 중앙 정부가 어느 한쪽 편을 들기 어렵다”는 것. 이 같은 재경부의 유치 경쟁론에 산자부 역시 “청주공장도 상수원 보호 구역에 있지만 과거 동부 일렉트로닉스의 청주 상우 공장 증설을 허용해 준 전례가 있다”며 청주 공장 대안론을 들고 나왔다. 2003년 동부일렉트로닉스가 환경부 기준보다 엄격한 무방류 시스템을 적용, 구리 같은 ‘특정 수질 유해 물질 배출 제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공장 증설을 허가받은 예를 들어 박 차관의 주장을 뒷받침한 것이다. 결국은 정부 역시 스스로 환경 문제는 별 게 아니라는 것을 밝힌 셈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하이닉스 관계자의 해명은 설득력이 크다. “300mm 신규 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공장을 지을 땅이 필요하다. 그 대상 지역은 이천 사업장을 비롯해 청주 사업장, 중국 등 모두 계획되어 있다. 그리고 각각의 공장은 저마다 성격도 다르고 투자 비용이나 연구 개발 인프라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이천 공장을 대체해 청주 공장에 증설하라는 말은 기업의 현실을 너무 모르는 말이다. 또 어느 지역에 공장을 증설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기업이 판단할 문제”라며 ‘유치 경쟁설’은 물론 ‘어느 한쪽 편들기’라는 말을 근본적으로 부정했다.

그렇다면 결국 정부의 유보 배경은 국토 균형 발전론으로 모아진다. 이에 대해서 하이닉스 홍보팀장은 “균형 발전을 이루려면 중심이 서고 그 중심을 축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이천은 본사다. 본사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발전을 해야 청주고 중국이고 다른 지역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이라며 반박했다. 결국 새롭게 나온 ‘유치 경쟁론’은 정부의 국토 균형 발전론을 확산시키기 위한 물타기에 불과하단 얘기다.

결국 정부의 균형 발전론과 기업과 지역의 현실론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격렬하게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결과는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과연 해법은 없는가. 여기서 우리는 유사한 역경을 딛고 얼마 전에 준공한 LG 필립스 LCD 파주공장을 떠올려야 한다. 노 대통령이 준공식 날 손학규 지사에게 “그렇게 떼를 쓰시더니 이제 만족하십니까”라는 농담성 인사를 던졌다는 보도에서 보듯 여기에는 지도자의 강력한 신념과 추진력,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기업과 중앙·지방 정부의 유기적 협조가 필수다.

섭섭함을 토로하며 “아직 시간이 있으니,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응해 나가겠다”는 냉냉한 하이닉스의 입장이나, 중앙 정부에 모든 책임을 떠미는 경기도의 미온적인 자세도, 또 기업 현실을 외면한 엘리트 관료들의 완강한 원칙주의로는 어떤 해결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성장 관리 권역에 투자 계획을 밝혀온 팬택, 케이씨씨, 한미약품, 현대제철 등 4개 기업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 오는 11월쯤에 결정하겠다고 발표, 새로운 형평성 논란으로 혼란만 자초하고 있다.  

규제 개혁을 주도하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존재감이 갈수록 미미해지는 지금, 현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시스템보다 이를 슬기롭게 조정할 수는 역량 있는 지도자의 역할이 다시 아쉬워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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