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예총 문화센터 ‘동양화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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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예총 문화센터 ‘동양화 강좌’.
  • 양동민
  • 승인 2007.08.0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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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도 주춤하게 만드는 화선지 위의 정신 수양

   
 7월 20일, 금요일 저녁 설봉공원 야외 대공연장 무대 뒤편에 있는 이천예총 문화센터 내 ‘동양화 강좌’를 찾았다. 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진지한 동양화 수업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동양화 강사가 설지 이영환 선생이기에 더 그랬다. 이천 미술 협회를 만들었으며, 이천 예총 회장을 역임한 이천 문화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게다가 그의 예술에 대한 조예와 식견은 종종 나를 감동시켰다. 겁 없이 강의실로 들어간다.     묵향 그윽한 강의실의 구도자들
강의실에는 중급

반과 초급반이 진행되고 있다. 중급반 5명의 교육생들은 저마다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에 여념이 없다. 먹을 듬뿍 머금은 붓이 화선지 위로 빠르게 움직인다. 남여 구분 없이 선비의 자세로 조용한 가운데 풍기는 묵향이 그윽하다.
“국화의 줄기는 대나무와 틀립니다.”
교육생 강 씨는 국화를 그리던 중, 국화 줄기의 마디가 강함을 지적받는다. 사군자가 기개와 절개를 표현하지만 아마도 대나무의 굳은 기개와 국화의 절개와의 약간의 차이일 듯싶다.
국화의 꽃잎을 백묘법(윤곽선으로 조형을 구사하는 기법)으로 익힌 정성우 (45)씨는 몰골법(윤곽선을 표현하지 않고 구사하는 기법)으로 꽃잎을 표현한다. 정씨는 30년 가까이 취미로 서예를 했다지만 전각에다 표구도 배워 이 분야에선 수준급이다.


“붓글씨에서 사군자, 이를 터득해 산수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이 시간만큼은 제일 행복합니다. 심취하고 싶어지거든요.”
그는 사군자를 그리면서 구도를 잡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 한다. 기본적인 기법을 익힌 다음에는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한 획이 구도와 각도에 따라 그리고 농담에 따라 표현되는 사군자는 그리는 이에 따라 달리 표현된다.


그도 그럴 것이 사군자나 동양화는 거짓이 없다. 작가의 의도가 붓으로 솔직히 표현된다.
“처음에는 이해를 못 했는데, 담백함이 있습니다. 기교는 생각도 못 합니다. 하나의 기법을 무수히 연습하다보면 리듬을 타며 절제된 나만의 것이 완성됩니다.”
옆 강의실 초급과정 반에는 정씨의 딸인 중학교에 다니는 혜인이도 함께 동양화를 배운다. 실습시간에 아버지가 그리는 그림을 유심히 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는 듯하다.
혜인이는 아직 어린 중학생이지만 자신이 커서 미대(동양화) 교수가 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처음에는 미술을 전공하려고 서양화 학원을 다녔어요. 우연찮게 동양화 대회를 나가 두 번 입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나에게 동양화가 적성에 맞는 것을 알게 됐어요.”
혜인이는 거친 선으로 빚어낸 소나무의 당당함이 좋아서, 붓에 물기를 적게 하여 갈라진 붓끝으로 나오는 거친 효과를 표현하는 갈필법을 좋아한다. 
진한 농묵 위에 연한 담묵이 올라가고
중급생 중 B씨는 먹의 농담을 연습한다. 선생은 빈틈없이 채워진 획을 보며, “연습을 할 때는 가늘게 그리지 말고, 굵게 표현하라. 먹을 만지는 것을 두려워 마라”며 선생이 직접 물통에 붓을 열심히 헹군다.


“붓에 농담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붓의 상단에는 깨끗한 물, 중간에는 먹과 물이 고이는 연함이, 붓끝에는 진함이 함께 합니다.”
선생은 교육생들에게 붓 쓰는 법과 먹의 다섯 가지 색을 다시 설명한다.
붓을 쓰는 법엔 붓을 똑바로 세워서 쓰는 정필과 붓을 납작하게 만들어 대나무 잎 같이 쓰는 편필이 있다. 그리고 먹에도 다섯 가지 철학적인 색이 있다.
농은 진함이다. 진함이란 어둠이다. 검을 현(玄)은 검다는 색깔의 개념이 아니라 무한대의 개념이다. 둘째, 맑고 순수함을 표현하는 연한 담이다. 셋째 습이다. 물이 많아 촉촉함이다.
넷째 건이다. 빡빡하게 마름이다. 다섯째 윤이다. 윤택함이다. 그리는 사람마다 빛이 다르다. 여기서는 작가의 정신이 필요하다. 재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일례로 물은 투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계곡에 흐르는 물이 바위와 돌에 부딪히면 흰색이며, 물이 넓고 깊게 고여 있으면 푸른색이다. 그리고 썩은 물은 흑색이다.
“이런 특성을 알면, 진한 농묵 위에 맑고 순수한 담묵이 올라가는 이치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림 공부에서 정신 수양으로
한편 80세의 노익장을 과시하는 한 수강생은 변치 않는 산수화의 바위를 그리고 있다. 소싯적에 붓글씨나 사군자 정도는 서당에서 배웠을 법하다.
“어릴 적 서당에서 한시나 한문을 배웠지. 하지만 붓글씨와 동양화는 틀려. 나 같은 경우, 서예는 서도라고 해서 그저 많이 써 본 달필일 뿐이야.”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정진하는 것이 재미다.


“붓글씨도 쓰며, 한시와 같은 고문을 연구하며 그에 걸맞게 동양화를 그린단 말이지. 죽는 날까지 배우고 노력해도 부족하지만, 나의 정신수양에는 그만이야.”
실습을 마친 노수강생은 문방사우를 정리하며, 기회가 된다면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한다.
초급반에 10여명의 교육생도 저마다 진지하다. 도예가인 이재환(45) 씨는 난을 치는 것이 얼른 보기에도 수준급이다.
“도자와 동양화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선조들의 옛 것을 바르게 익혀 후학들에게 전할 것입니다.”


우리네 일상의 삶은 제도화된 속에서도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간다. 이영환 선생에 따르면 그림도 마찬가지다.
‘보기 좋다’란, 휴머니즘(인간다움)과 그림을 감상하는 5가지 개념의 범주에서 가치로 인식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진(眞), 선(善), 미(美), 기술(道), 종교(宗敎)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우리의 옛 선조들이 다섯 가지의 개념을 갈고 닦은 전통과 양식을 배우고 익혀, 변화와 재구성을 통해 창조하는 단계를 만들어 가십시오. 이것이 여러분께서 동양화를 배우는 목적이며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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