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의 재발견(6) / 부발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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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의 재발견(6) / 부발읍
  • 양원섭 기자
  • 승인 2007.07.08 1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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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 고목 늘어진 숲과 맞바꾼
초현대식 반도체 공장

▶인 구 : 34,079명(남자 16,745명, 여자 17,334명)     
▶세 대 : 12,753세대
▶가 구 : 12,775가구(농가1,176, 비농가 11,599)
▶면 적 : 41.90㎢
    - 농경지 : 23.30㎢(55%)
    - 임 야 : 9.20㎢ (22%)
    - 기타 : 9.40㎢(23%)
▶ 행정구역 : 법정리:14개리, 행정리:39개리, 반수:220개
▶공무원수 : 28명
▶학 교 : 8개교(고등학교1, 중학교 2, 초등학교 5, 분교 1)
▶사 업 체 : 92개소
▶특 산 물 : 쌀, 축산, 고구마, 반도체

   

“지금은 3번 국도를 중심으로 주위가 개발이 되었는데, 그전에는 이 주위 경관이 엄청 아름다웠어. 새말(지금의 신하2리)에는 물푸레나무 고목이 있었고, 큰말 마을회관 앞에는 큰 홰나무가 멋지게 서 있었고, 그 건너에는 마체 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 가면 두송이라는 큰 향나무가 죽어서 하얀 채로 있었어. 여름에는 백로가 날아오고, 봄에는 꽃들이 지천에 피어 엄청 아름다웠어. 들에 가면 논에 웅덩이가 있어서 논에 고기가 들벅들벅하고, 논과 논 사이에 내려오는 물이 있어서 여름에 삥 둘러막고 물을 퍼서 고기를 잡아다 그걸 끓여 먹으며 여름을 났지.

보리 팰 때면 여치가 들끊었어. 들지대 같은 게 있으면 그런 숲 속에서 곤충들이 우는 소리가 요란했지. 곤충이 많으니까 새도 많고 들짐승들도 많았었어. 지금은 들에 가면 쓸쓸해. 골짜기에 고기들이 헤엄치고, 여름에 더우면 웅덩이에 풍덩 뛰어들거나 냇가에서 목욕도 하고... 지금은 그런 게 없어. 죄다 오염되어서 더러워 물이. 그게 지금 안타까워... 옛날의 그 아름다운 것들이 다 없어졌어...”
그 아름다운 곳이 사라진 곳에 대신 들어선 것이 바벨탑처럼 우뚝 솟은 공장의 타워다.

근대화 산업화로 확 달라진 부발읍


나지막한 시골집을 흡사 깔아뭉갤 듯이 육박해오는 20층짜리 고층 아파트, 전에는 드물었던 안개이고, 그 안개속을 뚫고 굉음을 내며 오직 앞으로만 질주하는 산업도로였다. 그 산업도로의 끝은 모든 것의 중심. 서울로 가는 길이었다. 부발은 그길을 따라 온갖 최첨단으로 무장한 휘황찬란한 서울로 떠나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니 서울이 부발을 통째로 삼켜 버린것은 아닐런지...


근대화ㆍ산업화를 겪으면서 부발의 모습이 크게 바뀌게 되는 계기는 세 번 정도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일제시기 공회당(마을회관) 건립을 계기로 한 변화이고, 둘째는 1970년대 초반 영동고속도로 개통과 새마을운동이었다. 세 번째는 1980년대 현대전자(하이닉스)입주 이후 상가와 아파트촌의 형성이다. 그러나 이중에서도 결정적인 변화는 영동고속도로의 개통과 현대전자 입주로 상징되는 산업화바람을 타면서였다.


고속도로의 개통과 이천 톨케이트의 건설은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 안팍의 근접생활권으로 만들면서 대대적인 땅투기의 대상이 되었다. 곧이어 ‘대한애자’ 등의 공장입주가 시작되었다. 그 인근은 공장부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도 1983년 현대전자의 입주와 뒤이은 상가ㆍ아파트촌의 형성에 따른 변화에 비교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현대전자와 상가, 아파트 단지는 공간적으로 완전하게 부발속의 이질적인 영역으로 분할해 놓았다.


이방인들이 부발에 처음 들어와 느끼는 감정은 아마도 이런 이질감일 것이다. 20층이 넘는 초고층 아파트와 나이트클럽이 휘황한 상가지대를 지나면 아직도 개발에 늦은 옛 모습의 흔적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개는 동일한 지역에서 존재하지만 완전한 별개의 세계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질감과 단절은 부발을 도농 복합 마을이라고 그럴 듯하게 부르게 했지만 그 복합은 내적인 소통과 연결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단절과 분할에 근거한 지리상의 병렬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마을 주민들은 본격적으로 바깥세상을 볼 수 있었고, 옛 마을은 더 이상 삶의 유일한 공간이 아니었다.

현대전자 덕에 취직도 하고, 땅값도 오르고


“아미리로 이사온 다음해 현대전자 공장 건설 공사가 시작되었다. 건설 공사가 시작되면서 일자리가 터졌다. 공사장에서 직접 일을 했다. 마을 사람들도 일을 많이 했다.

 당시 하루 일당이 2500원인 반면 현대전자의 일당은 1만 5000원이었고, 당시 땅값으로 계산하면 하루에 5~6평 정도를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번돈 1000만원으로 지금의 이천톨게이트 부근 땅 1700평을 샀는데 이천톨게이트가 확장공사 때 매수를 해서 그 보상이 1억 3000만원이 나왔다. 이 돈으로 농지를 사서 농사를 짓고 있다. 현대전자가 들어와 땅값이 올라 부자가 된 사람도 많았고, 일 안하고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여자들은 현대전자 식당에서 일하면 80만원쯤 받았으니 농사를 지으려 하지 않았다.”
이렇듯 1985년부터 현대전자 부근을 시작으로 땅값은 하루가 멀게 올라갔고, 이러한 땅값 상승으로 마을 사람들의 토지와 임야가 외지사람들에게 많이 팔렸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소유한 농지나 임야를 팔아 주변 상가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거기에 따른 폐단도 많았다. 3번국도를 중심으로 땅투기에 밀려, 땅의 소유주들이 외지에 있는 사람들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역세권이라는 소리가 알려지면서 지금도 땅을 사려는 외지사람들로 부동산 업체는 바쁘다는 귀뜸이다.


부발은 외지의 기업으로 인해 발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 92개의 기업체에서 11개가 대기업이다 보니 그로 인한 인구 증가와 고용 창출 역시 부발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부발의 행정의 중심이던 무촌리의 행정역할과 상권은 3번 국도를 중심으로 옮겨져 발달하게 되었다.


지금의 이천 시내와 비교해 볼 때 부발쪽의 상권이 더 발달했다는 이도 있다. 앞으로 부발 역사가 들어오고, 긴 법정투쟁 끝에 가산온천이 활기를 띨 전망이어서 앞으로의 개발과 발전은 불보듯이 뻔한 일이다.


거기다가 이천 전체의 희망이었던 하이닉스 공장 증설만 성사된다면 모름지기 ‘세계속의 부발’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이에 발맞춰 이천시에서도 지난 10여 년 동안 도로포장 사업과 지방도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하이닉스 증설로 ‘세계속의 부발’을 꿈꾸다


소규모 기업환경 개선사업 일환으로 추진해 왔던 부발 고백산업단지 환경 개선 사업이 최근 마무리됐다.
그리고 지역에 산발적으로 생긴 작은 중소기업들과 이들 공장들은 그 동안 진출입시 도로 폭이 좁고 협소할 뿐 아니라 급경사로 시야확보가 어려워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문제를 겪어 왔다.


아직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천시는 예산이 닿고, 기회가 주어지는데로 적극 지원해 주겠다는 방침이다.
이천시는 2010년 개통 예정인 성남~여주 복선전철 역세권(신둔ㆍ이천ㆍ부발역)을 중심으로 각각 10만~20만평에 2만~3만명이 거주하는 미니신도시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는 2020년까지 인구 35만명의 자족 계획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중장기계획에 따라 추진되는 것이다.


시는 또 숙박과 체험이 가능한 3만평의 농촌 테마파크를 건립하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러나 현행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이천 지역에서는 6만㎡이하 택지개발만 허용되기 때문에 미니신도시를 조성하려면 수질오염총량관리제와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 통과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리고 그동안 토지오염과 하천오염의 주범이었던 기업체에서도 환경개선과 정화사업을 통해 친환경기업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하이닉스의 환경친화기업선정에 이어 (주)진로가 환경부로부터 ‘환경친화기업’에 지정된 것은 좋은 예이다.


한편 부발읍 마암리 일대 9951평에 건축면적 2544평 규모의 신세계 푸드 물류가공센터를 건립키로 하고  250억원의 금액을 풀어 놓았다.
지금 최대의 쟁점은 하이닉스다. 하이닉스의 공장증설과 발전이 부발의 제3의 도약을 하는 모든 숙원의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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