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처럼 공부하면 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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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처럼 공부하면 새 된다?
  • 이천저널
  • 승인 2007.06.2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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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서의 발목 잡는 공부에 날개 달기

공부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아무래도 난 머리가 나쁜가봐!’ 하고 쉽게 낙담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공부를 잘 하려면 좋은 머리,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머리가 좋으면 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남 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고 거꾸로 머리가 나쁘면 아무리 해도 경쟁에서 뒤쳐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이 원하는 그 ‘좋은 머리’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 한번 본 것, 한번 들은 것, 한번 외운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면 머리가 좋은 것일까요?

흔히 머리가 나쁜 사람을 보고 ‘새 머리(!)’라고 놀립니다. 요즘에는 좀 점잖게 ‘조류’라고 하더군요. 방금 본 것도 돌아서면 잊거나 예전에 만났던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 등을 놀리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놓고서 ‘까마귀 고기를 잡수셨나?’라고 핀잔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조류의 두뇌에 대한 인간의 평가는 썩 좋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그렇다면 조류는 정말 머리가 나쁠까요?
동물의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조류의 뇌는 어떤 면에서는 인간보다 월등히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새는 한번 본 것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데 있어  거의 사진과 같은 수준의 정밀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철수네 집 앞 전봇대에 사는 까치는 철수의 얼굴을 사진처럼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까치가 알고 있는 철수는 수십 명입니다? 까치의 기억력은 너무 정확해서 위에서 본 철수, 밑에서 본 철수, 왼쪽에서 본 철수, 오른쪽에서 본 철수, 앞에서 본 철수, 뒤에서 본 철수 등 모두 다른 철수들입니다. 조류의 뇌가 가지고 있는 이런 특징 때문에 때로 새들은 금방 본 사물을 좀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면 다른 사물이라고 인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새 머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은 한편 오해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근거가 있는 것이지요.

>> 오해1) 인간의 두뇌는 새보다 형편없다?


순수한 의미의 기억력에 있어서는 인간의 뇌는 새에 비해 형편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아니, 그렇다면 뭔가 좀 이상한데...?! 인간의 머리가 제일 좋아야 하는데!?)
머리가 좋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위에서 말한 조류와 같은 기억력이고 다른 하나는 뭔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첫째 의미의 ‘좋은 머리’에서는 인간이 조류보다 못하지만, 다행히 인간은 둘째 의미의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능력, 부분을 모아서 전체를 그려내는 능력, 서로 다른 것들의 유사점을 찾아내는 능력, 비슷한 것들의 서로 다른 점을 보는 능력이 두 번째 ‘좋은 머리’에서 나옵니다. 창조의 능력입니다.


조류에게는 좀 부족한 이런 창조의 능력은 어떤 것일까요? 과학자들을 말을 종합해 보면, 이 능력은 ‘적당히 잊어버리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철수네 까치처럼 ‘철수 사진’을 수십 장씩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대신 여러 각도에서 바라 본 철수의 얼굴을 대충 기억하고 동시에 대충 잊음으로서, 여러 명의 철수를 종합하여 단 한명의 철수를 기억하게 됩니다.


인간의 뇌가 보여주는 이런 종합의 특성은 ‘기억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잊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퍼즐을 맞출 때 한쪽 퍼즐이 튀어나와 있으면 다른 하나는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모든 기억의 조각들이 너무 정확하여 튀어나오지도(기억) 들어가지도(잊음) 않으면 조각들은 서로 맞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뇌는 작은 기억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기억과 잊음의 퍼즐조각을 만들어 냅니다.

 

>> 오해2) 그때그때 달라지는 기억의 능력


얼마 전, 네이처 뉴로사이언스라는 과학지에 재미있는 내용이 실렸습니다. 인간 기억의 특성을 연구하고 있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브리스 쿨 교수는 20명의 성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단순한 기억력 테스트를 하면서 대뇌의 활동량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참가자들에게는 단어 두 개로 된 세 쌍을 외우도록 했는데, 그 중 두 쌍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단어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다락방-먼지’, ‘다락방-고물’, ‘영화-물레’같은 단어쌍들을 잠깐씩만 보여주고 외우게 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연관성이 높은 단어쌍인 ‘다락방-먼지’를 다시 한 번 자세히 보고 기억하라고 피실험자들에게 주문한 후, 첫 단어(다락방)를 이용하여 모든 조합의 단어들을 떠올려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피실험자들은 연관성이 전혀 없거나 적은 단어의 조합(영화-물레)을 떠올릴 때보다 연관된 단어의 짝을 떠올릴 때 평균 15%나 더 틀리게 답했습니다. 즉, ‘다락방-고물’이라고 답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고물’이라고 답을 했다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대뇌의 한 부분에서 ‘다락방-먼지’와 ‘다락방-고물’을 서로 모순되는 기억으로 파악하여 대뇌의 다른 부분에서는 한번 밖에 보지 않았던 ‘다락방-고물’에 대한 기억을 지우게 한 것입니다. ‘다락방-먼지’에만 집중하던 실험자들의 뇌는 ‘다락방-고물’이나 ‘영화-물레’ 등을 대충 무시하고 망각하여 결국 ‘다락방-물레’, ‘영화-고물’ 등으로 엉뚱한 답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참가자들의 대뇌는, 경쟁적인 기억을 다루는 것으로 알려진 부분과 기억을 지우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부분에서 매우 왕성한 활동이 일어나는 것이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테스트를 반복하자 기억을 지우는 강도가 약화되었는데 이는 기억 적응이 이뤄졌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뉴스는 이 실험의 결과를 건망증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이라고 전하였는데,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 그 자체가 대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대뇌는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기억은 더욱 강화할 뿐만 아니라, 비슷하지만 덜 사용되는 기억은 적극 억제하기도 합니다.

 

>> 선택과 집중이 기억력을 높인다


이 실험에 대해 다른 과학자들은 ‘잊어버리는 과정은 좀 더 훌륭한 기능적 목적을 위한 것’이며 ‘연구팀은 이 과정에 대해 신경생물학적 근거를 명쾌하게 마련했다’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현재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집중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을 두뇌가 스스로 알아서 정리하여 관심이 없는 것은 금방 본 것도 지워버리고, 집중한 것은 그 특성을 모아서 새롭게 종합되어 집니다. 이렇게 보면, 머리가 좋다는 것은 모든 것을 천편일률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과 선택으로 기억과 망각을 적당히 오고가면서 ‘수십 명의 철수’를 ‘한명의 철수’로 그려내는 것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할 때, 지루하게 무턱대고 재미없이 앉아서 영어단어와 수학

공식을 하염없이 외우고 있으면 ‘조류’가 되기 십상입니다. 세상의 여러 모습을 이리도 보고 저리도 보면서 많은 사진을 찍어 크고 멋진 작품 ‘한 장’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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