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 주간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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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주간 논평
  • 이천저널
  • 승인 2007.06.0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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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평화를 지키고자 한다면

어쩌다보니 <가요무대>를 즐겨보는 세대가 됐다. “사랑하는 부모님, 고마운 친지분들과 함께”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월요일 밤 늦은 시간에 집에 있게 되면 혼자서 채널권을 고수하곤 한다. 그러다 아는 노래라도 나오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따라 부르게 되는, 그런 정도의 애청자다. 지난 월요일에는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특집으로 꾸며졌다.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를 따라 부르다 「전선야곡」의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에서 콧날이 시큰했다.

이런 호국 보훈의 노래들은 대개 한국 전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고작해야 광주 사태 때 군 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격세지감이 있지만, 그 공감만은 그리 멀지 않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 내가 나서 자란 곳이 서울과 인천이면서도 이상하게 고향이라는 의식이 안 드는 것이 아버지의 고향이 황해도 연안이라는 선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는데 그걸 이유로 댄다면 설득력이 있을까 모르겠다.    

또 하나 보태면 내가 어려서 듣던 아버지의 한국 전쟁 체험이다. 아버지는 피난 중에 퇴각하는 인민군에게 붙들려 평양까지 끌려갔다 탈출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으시다 전쟁 후반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이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 노래를 즐겨 부르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김추자의 탄력 있는 몸매와 목소리를 한번쯤 다시 볼 기회가 있을까)가 이런 특집에 빠지면 서운하다. 이 노래를 들으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어떤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청룡 부대인지 맹호 부대인지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월남으로 떠나는 장병들의 환송 장면이다. 연배로 보면 우리 큰 형뻘쯤 되는, 그 장난기도 아직 가시지 않은 젊은 날 그들의 앳된 모습이 이상하게 나를 슬프게 한다. 그리고 그때 <대한뉴스>에서 보면서 느꼈던 그들에 대한 부채감은 지금도 그대로다.    

지난달 25일에는 국산 이지스 1번함 세종대왕함(7600톤급)이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진수식을 가졌다는 뉴스로 떠들썩했다. 일본의 최신예 아타고급(7700톤) 이지스함보다 정밀 타격 능력 면에서 강력하며, 드디어 우리나라도 미국, 일본, 스페인,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 이지스 구축함 보유국이 됐으며, 해군은 특히 미국, 일본과 같은 7600톤급 이지스 구축함을 세계에서 3번째로 보유하게 됐다는 한 방송 기자의 들뜬 목소리도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다른 무엇보다 진수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 연설의 한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우리가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힘을 함부로 쓰지 않으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평화를 지키고자 해도 스스로 평화를 지킬 능력이 없으면 평화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날 역사에서 우리가 얻었던 경험대로 이제 우리 스스로를 확실히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춰가야 합니다.” 

수사학에는 미래의 가능성에 관한 설득의 논법이 있다. 그 특징 중에 하나는 사람들은 대개 미래의 가능성에 근거한 것보다 과거의 사실에 근거를 둔 개연성 있는 논법에 더 많이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 논법을 암시하는 경향 중에 하나가 ‘무슨 일을 이루어내려는 힘과 욕망이 있다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일찌감치 핵무기의 개발과 소유의 포기를 선언했다. 그것이 진정으로 평화를 갈망하는 한 국가의 대통령으로서의 자율적인 결정이었다고 믿고는 있지만, 핵 감축 의지를 확산시키기 위한 가장 강한 논법은 핵무기를 소유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힘과 욕망을 억제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굴욕적인 역사는 늘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이론이다.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 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로 시작하는 현충일의 노래가 오전 10시에 울리던 추모 사이렌 소리와 함께 생각난다. 그리고 2002 월드컵 때 함상에서 조국의 선수들을 응원하던 고 윤용하 소령의 유난히 하얀 얼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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