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 주간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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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주간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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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6.0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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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인가 ‘변화’인가?

당나라 때 시인이었던 이상은(李商隱)이 쓴 『잡찬(雜簒)』이란 책에는 당대의 여섯 가지 살풍경(殺風景), 요즘 말로 하면 ‘분위기 깨는’ 여섯 가지 예들이 묘사되어 있다. 두루 예를 들어도 귀담아 들을 만하지만, 요 며칠은 그 중에 분금자학(焚琴煮鶴)이라는 말이 입가에 맴돈다. 말 그대로 풀면, ‘거문고를 불쏘시개로 삼아 학을 삶아먹는다’는 말이다. 늙은 소나무 가지에 앉아 쉬고 있는 학처럼 느긋하게 심금을 울리는 거문고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지난 달 갑작스레 특전사 등 세 곳의 군부대가 이천으로 내려온다는 정부의 발표가 났다.  산 좋고 물 좋은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당신 동네에 군부대가 들어서야 하니 다른 곳으로 떠나라는 말은 ‘분금자학’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지역은 수도권의 끄트머리에 걸려 혜택은커녕 온갖 규제로 묶여 그동안에도 그 흔한 공장 하나 못 짓고 그 잘나빠진 땅만 매만지며 살아온 터였다.

그러다 최근 장애인 체육 시설도 들어서고 어린이 체험장도 만든다고 해서 조금 들떠 있던 차에 그 기이한 소식이 날아든 것이었다. 여기저기 하소연도 해보고 목소리도 높여 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 참에 죽자고 벌인 일이 정부를 상대로 한 시위였다. 처음엔 이천을 군부대 이전지로 추천했다는 토지공사로 몰려갔다. 숫자는 천여 명이 넘었다지만 앞장 선 사람들은 이전 예정 마을에서 달려온 노인과 부녀자, 장애인 수십 명에 불과했다.

경찰의 물대포에 토지공사 사장의 푸대접까지 받으면서 자괴감마저 들었다. 몇몇 시의원은 단식에 들어갔다. 내친 김에 달려간 곳이 국방부였다. 제 생활 모두 팽개치고 지역을 위해 시위에 앞장 선 사람들은 이번엔 좀 강하게 호소해 가타부타 대답이라도 들어보자고 단단히 별렀다. 그 덕에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재검토하겠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 그 시위 중에 흥분한 소수에 의해 벌어진 ‘돼지 도살 퍼포먼스’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맥도날드 회사에 닭 도축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가스 질식법으로 고통 없이 죽이라는 동물 보호 단체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지금, 산 돼지를 거리에서 도살한 퍼포먼스는 그 의도와 달리 비난 받기에 충분했다. 그 결과 이천시는 동물 보호 단체는 물론 네티즌과 언론으로부터 매서운 질책을 받았다.

군부대 이전의 부당함과 이천 시민들의 절박함을 외치던 목소리는 어디론가 묻혀 버리고 이천은 지역 이기주의에 생명을 경시하는 형편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매도되어 버린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가. 

인간에게 던져진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 중에 하나는 자신의 삶을 유지시키기 위해 다른 생명을 먹어 한다는 것이었다. 생명이 생명을 먹어야 산다는 현실은 인간에게 생명에 대한 신비와 경외감을 갖게 했다. 따라서 고대인들의 사냥은 단순히 힘을 과시하거나 충동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른 생명의 먹이가 되는 동물은 ‘자발적인 희생자’였으며, 따라서 사냥은 스스로 먹이가 된 신을 죽이는 행위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인간들의 제의는 이런 신과 화해하고 조화를 이루고 싶은 노력의 일환이었다.

우리가 놓친 것은 바로 이 화해였다. 현행법으로 보면 일차적으로는 도살(盜殺)이지만, 더 큰 문제는 생명을 죽이는 힘이 분노와 충동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종합해보면 우리는 우리를 강제하려는 힘을 힘으로써 맞받아치려 했고, 그 무의식의 결과가 ‘돼지 도살 퍼포먼스’로 나타난 것이다. 

지금 이천은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있는 듯이 보인다. 그 에너지는 예측을 불허할 만큼 크고 드세다. 한국해양연구원은 최근 동해 해수면의 평균 수온이 최근 20년 간 전 지구 해양의 연평균 수온 상승률보다 1.5∼2배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고 밝혔다. 어떤 신문은 이를 생태계의 ‘파괴’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이를 ‘변화’라고 말하자. 이천을 둘러싼 이 드센 소용돌이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이천이 누려온 기존 질서의 ‘파괴’라고 인식했을 때 우리는 점점 더 극단적이고 소모적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이천 사람들의 임무는 하루빨리 이 변화에 적응하고, 대처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야 군부대 이전 반대를 지역 이기주의로 몰아세우는 세력에 대해서도 정당하게 대응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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