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 꿈꾸는 혁신 모델 도시(8)/농촌형 분산 테크노폴리스 일본 오이타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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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이 꿈꾸는 혁신 모델 도시(8)/농촌형 분산 테크노폴리스 일본 오이타 현
  • 이천저널
  • 승인 2007.05.0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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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도의 첨단 산업 유치만이 지방 도시 발전의 모델은 아니다

   
일본 열도 남단의 규슈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오이타(大分, Oita)는 오이타 현의 현청 소재지이기도 하다. 넉넉한 푸른 산과 웅대한 자연 경관의 벳부 만에 둘러싸인 오이타에는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오이타(大分) 강과 오노(大野) 강이 흐르고 있다. 인구는 약 43만 명(2002)에 이르며, 일 년 내내 온화하다. 글|준 초이 (경제 칼럼니스트)

역사적으로 오랜 항구이자 고대부터 현대까지 1300년에 걸쳐 현의 수도를 담당해 온 오이타에는 농업과 공업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중세에는 명나라와 포르투갈과의 무역이 번창했었다. ‘도요노쿠니(豊年의 나라)’라는 오이타의 옛 호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강을 중심으로 한 비옥한 농지에서는 다채로운 농업이 이루어져 야채와 꽃, 과수, 축산 같은 농업이 발달했으며, 바다에서 들어오는 신선한 해산물이 많이 잡힌다. 특히 분고스이도(豊後水道)는 수산물이 풍부하기로 유명한데 여기서 잡히는 새우나 생선류의 맛은 이름나 있다. 또한 세계 굴지의 온천 휴양지인 벳부도 오이타 현의 한 도시이다. 1930년 초에는 3개 철도 노선이 교차하면서 규슈의 중심 도시가 되기도 했다.

오이타는, 1961년 임해 공업 지역 조성 사업이 진행되고 1964년 신산업 도시로 지정된 후에는 절반이 넘던 농업, 임업, 어업에 종사하는 노동인구가 1985년에는 9%로 떨어지는 등 근대 공업 도시로 급격하게 변모해 갔다. 하지만 오이타 현은 전통적으로 아직도 농촌적 성격이 강한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 한 마을에 한 가지 생산품 만들기에서 테크노폴리스 프로그램까지

오이타가 공업 도시로 변모하게 된 데에는 1980년대부터 일본 중앙정부에서 계획, 실시한 테크노폴리스(Technopolis) 프로그램의 영향이 크다. 이 계획에 따라 오이타를 모도시로 하는 테크노폴리스가 오이타 북부지역에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테크노폴리스 프로그램’이란 특정 장소 안에서 국가 및 지역 발전을 선도하는 기술 혁신과 이와 연계된 산업 생산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과학 단지, 기술 단지, 과학 도시 등의 개발을 위해 시행한 일본 도시 개발 정책을 말한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나 우리나라의 대덕 연구 단지를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오이타 테크노폴리스는 1979년 당시 오이타 현의 지사였던 모리히코 히라마쓰가 창안했다고 평가된다. 히라마쓰 지사는 ‘한 마을에 한 가지 생산품’이라는 슬로건 아래 보조금 지원 대신 지역 개발을 직접 현이 지원하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중앙 정부에서 전국적인 테크노폴리스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이전이다. 이런 생각으로 히라마쓰는 1979년, 공항에 기반을 둔 산업 지구 계획을 시작했다. 항공화물에 의존하는 농촌형 전자 및 첨단산업을 육성하려는 의도였다.

전직 일본 통상산업성 관료이기도 했던 히라마쓰는 일본에 외국인 투자를 가장 강력하게 추진한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분산된 농촌형 테크노폴리스 개념에 대해 처음 일본 통상산업성의 계획가들은 반대했으나, 결국은 그가 이겼다. 히라마쓰는 외국의 첨단산업 업체들에게 오이타가 지닌 네 가지 핵심 경쟁력에 대해 강조했다. 투자에 대한 지역의 수용 환경, 양질의 노동력, 여객 및 화물의 접근 용이성, 그리고 외국 기업이 일본 기업과 동등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더불어 연구 부문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오이타 현은 오이타 대학과 몇 곳의 다른 장소에 연구 개발을 프로그램을 설립했다.

>> 가장 성공한 테크노폴리스가 되다

오이타 테크노폴리스는 4개의 구역으로 나뉘고 각 구역은 작은 모도시를 갖는다. 이 중 공항 도로 주변의 과학 단지인 기쯔키에는 도시바, 오이타 다이헨, 이시이 툴, 혹스, 티아이 등의 기업체가 입주하고 있다. 오사카에 있는 모회사의 분공장인 오이타 다이헨은 로봇공학, 전력변환, 호형(弧形) 용접 장비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다이헨사는 로봇에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한데 오사카에 있는 최고 수준의 소프트웨어 기술자를 구하는 것은 어렵고 대신 이 지역 출신 고급 인력들이 귀향을 원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결국 실제로 이 회사에서 근무하는 수십 명에 이르는 소프트웨어 기술자들은 모두 오이타 현 출신으로 도쿄나 오사카에서 일하다가 고향으로 되돌아 온 사람들로 충원되었으며, 그 자신 역시 이곳이 고향이었다. 또한 기술자들 중의 절반 이상은 이 지역에 머물기를 바라는 오이타 대학 졸업생들이었다. 한편, 카메라와 OA기기의 유명브랜드인 캐논은 오이타 현 기쯔키에 신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19만 8000평방미터의 부지에 1500여 명이 일 할 수 있는 공장을 건설해 복사기와 프린트의 주요 부품이 될 토너와 드럼 등을 제조했다. 오이타가 일본 유일의 농촌 테크노폴리스는 아니지만, 농촌 테크노폴리스 중 가장 성공적인 경우에 속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오이타 테크노폴리스에는 1990년까지 60개의 회사가 들어왔으며, 테크노폴리스에서 일하는 사람은 해마다 늘고 있으며, 그 증가 인원은 현 전체에서 증가한 총 고용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 중 소프트웨어 한 부문에서만 800명이 고용되었다. 오이타가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 오이타의 성공 요인과 난관들

오이타 테크노폴리스에 들어오는 업체들에게 가장 큰 이점은 땅값이 싸다는 것이다. 오이타의 땅값은 도쿄의 약 30분의 1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지방 대학에서 나오는 고급 노동력도 오이타의 또 다른 중요한 매력이다. 이는 특히 노동력의 질 때문에 해외 이주 생산을 할 수 없는 집적 회로 생산에 매우 중요하다. 또한 개발 초기 현의 지사인 히라마쓰의 개인적인 능력이 크게 작용했는데, 그는 전직 통상산업성 최고 관료로서의 명성을 소니와 같은 회사를 끌어들이는 데 사용했다. 기업들은 이런 이유에서 비록 이곳이 이상적인 입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입주를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점도 발견됐다. 그 하나가 첨단 과학 단지의 핵심 요소인 대학들의 지원과 협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업들과 오이타 국립대학과의 연계가 약하여 생산과 연구 개발이 효율적으로 결합되지 않고 있으며, 그 결과 기술을 이전하는 경우도 드물다. 이에 따라 지방 산업은 집적 회로 칩을 위한 부품을 만드는 것 이상의 단계로 진입할 수 없었고, 연구 개발의 분산 역시 쉽지 않음이 증명되었다. 따라서 오이타는 일본 통상산업성의 생산 지표상으로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교육과 주거 측면에서는 낮게 평가되었는데 이는 대도시로부터 인구를 거의 끌어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평가된다.

또 다른 문제점은 개발 초기에 일관성 없는 교통 등 간접 자본 정책으로 인해 기업의 물류수요를 잘못 예측했다는 것이다. 항공망에 비해 도로망이 상대적으로 열악했으나 실제 기업은 도로를 이용한 물류를 선호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기업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면서 현재는 기존 운송망과 더불어 해상 운송망의 확충에 진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오이타는 FAZ계획(오이타 현 지역 수입촉진계획)의 중핵 시설인 ‘오이타 항 오자이 컨테이너 터미널’의 이용을 촉진하기 위해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오이타 포트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물류 경쟁력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해 1995년 6월에 개설된 한국 부산 항로, 대만 홍콩 필리핀을 연결하는 동남아시아 항로에 이어 중국 상하이 항로가 추가되어 아시아 각지와의 연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 혁신 도시는 첨단 산업 유치만이 능사가 아니다

오이타는 규슈 섬의 반대편 해변에 위치한 구마모토와 자주 비교된다. 이는 둘 다 테크노폴리스 개발에 대체로 성공한 경우이고 특히 두 지역 모두 반도체 생산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쪽 지구 모두에 포함되어 있는 규슈 섬의 중앙부 절반 지역은 지가와 임금이 낮다는 이유 때문에 1960년대 후반부터 반도체 생산업체가 많이 들어섰다. 그래서 한때는 세계 생산량의 10%, 일본 생산량의 25%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칩 생산자가 벤처자본의 자금지원을 받아 창업을 하고 지방 대학과 밀접한 연계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반해, 규슈의 이 두 지역은 다른 지역에 기반을 둔 대기업이 생산 시설을 갖고 있고 그 기능은 예외 없이 도쿄와 오사카에서 구상된 계획 내용을 단순히 수행하는 기능을 할 따름이다. 따라서 그러한 칩 생산자들의 규슈 진출도 규슈 지역의 두뇌 유출을 줄이는 데 그리 큰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우리의 경우, 혁신 도시 혹은 기업 도시를 꿈꾸는 지방 도시들은 하나같이 반도체 등의 첨단 산업 도시를 지향한다. 하지만 국가 차원의 과학 도시 육성 프로그램 중 가장 규모가 크다는 일본의 ‘테크노폴리스 프로그램’의 중간 평가가 전체적으로 그리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자신들이 원하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방 도시의 각 주체들이 가져야 할 자세가 어떤 것인지 한 번 더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대기업이나 중앙 정부의 일방적인 계획과 지원이 장기적으로 지방을 실질적으로 발전시키는 발판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지방의 진정한 발전은 결국 변화를 예측하고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각도의 잠재적 경쟁력을 꾸준히 계발하여야 가능한 일이다.

 

일본 테크노폴리스 프로그램

테크노폴리스 프로그램의 빛과 그림자

일본 테크노폴리스 프로그램의 특징은 그 규모에 있다. 세계의 유사한 다른 어떤 계획보다 방대하다. 이 프로그램은 무역과 산업을 담당하는 정부 부서인 일본 통상산업성이 주도한 계획으로 신기술을 육성하는 동시에 낙후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서 도심에서 벗어난 주변부 지역에 하나의 완결된 일련의 새로운 과학 도시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시작되었다.
도시연구가인 <세계의 테크노폴>의 공저자(카스텔과 홀 교수)들은 테크노폴리스 프로그램을 이해하려면 일본 특유의 국가 경제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일본은 거대 복합 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관료 집단들에 의해 계획되고 지도되는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모델은 대만, 한국, 싱가포르 등의 나라들에 의해 모방되었다.

테크노폴리스 프로그램은 1979년, 일본식 실리콘밸리의 가능성을 일본 정부가 연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런 연구의 결과, 1983년 관련법이 통과되었다. 이어서 21세기의 ‘테크노 군도(Techno-Archipelago)’를 만들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테크노폴리스 위원회는 1984년까지 부지를 정하고 1990년까지 물리적 하부구조를 건설, 2000년까지 각 테크노폴리스 개발을 완성한다는 빡빡한 스케줄을 정하였다. 이렇게 하여 최종적으로 26개 지역이 선정되었다. 선정기준은 이렇다.

1. 전체지구는 1300㎢ 이하
2. 첨단 기술 발전 잠재력이 있는 기업 존재
3. 충분한 용수와 주거 지역
4. 15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모도시
5. 첨단 기술 관련 교육 혹은 연구가 있는 기존 대학
6. 도쿄, 나고야, 오사카 등에서 1일 여행이 가능한 교통 접근성
각 지역은 항공, 우주, 광학, 생체공학, 의료 전자 공학, 로봇, 집적회로, 컴퓨터, 소프트웨어, 데이터 처리, 고순도 세라믹, 의약, 의약재료, 산업기계 등의 산업에 우선하여 지원, 육성되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대한 중간 평가는 별로 좋지 않다. 그 주요 이유는 이렇다.

1. 연구 개발, 교육 시설, 생산 시설이 통합된 위성 도시 건설이라는 최초의 비전을 달성하는데 실패했다. 대부분의 테크노폴리스 지역은 대도시에 비해 값싼 토지와 노동력에만 의존하고 있다.
2. 지역에 들어온 새로운 공장과 토착 산업 간의 기술 이전이 거의 없다. 새로 입주한 공장들은 대도시나 외국으로 보내는 부품을 제조하거나 일상적인 조립으로 그 역할이 제한되고 있다.
3. 지역 대학과 기업체 간의 산학연계의 발전이 미미하다. 그 이유는 엄격한 규제와 대학 연구진의 낮은 역량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대도시로부터의 핵심 인력 유치에도 실패했다.
4. ‘소프트’ 하부 구조의 부족으로 발전의 균형이 깨졌다. 일본 정부는 도로, 공항, 연구 시설 등 ‘물리적’ 하부구조의 건설에만 집중하고 연구 컨소시엄, 벤처 자본 투자, 대학 연구 등 ‘소프트’ 하부 구조의 건설에 실패했다.
5. 각 지역이 양호한 투자 환경을 건설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지방 정부의 재정적 부담이 증가했다.

일본의 테크노폴리스 프로그램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2010년대가 되어야 분명한 그 허실을 살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기존 프로그램과 새로 등장한 프로그램들이 기간(단기, 중기, 장기)과 목표에 있어 모순을 일으키고 있어 최초의 그림이 이미 퇴색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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