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 주간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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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주간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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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5.0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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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장 선생님의 용기

한국도예고등학교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와 있다. 교장 선생님이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보낸 가정 통신문이다. 지레 의례적인 가정 통신문을 떠올렸다면 오산이다. 이 글에는 자신이 몸 담아온 학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학생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애정,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직책을 과감하게 던지는 용기가 절절히 배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스승의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의 내용은 이랬다.   

“산과 들을 꽃으로 아름답게 수놓은 봄입니다. 학부모님 가정에 평안하신지요. 저는 한국도예고등학교 교장 정덕환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2007년 9월부터 개방형 교장공모제를 본교가 시범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본교는 특성화고등학교로써 도자기에 관한 전문학교이고, 한국 도예문화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설립된 학교입니다. 

지금까지는 공립학교로써 교장이 임용되었습니다. 임용 교장은 교육적인 측면과 행정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전문가이지만, 한국도예고등학교 설립 목적에 부합되는 도예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도자기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는 한계가 느껴진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2007년 9월부터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와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실시하는 개방형 교장공모제 시범학교로 본교를 예비 신청하였습니다. 이는 당해 학교 교육 과정에 관련된 기관 또는 단체에서 3년 이상 종사한 경력이 있는 자를 교장으로 초빙하는 것입니다. 즉 한국도예고등학교는 교육적인 측면과 행정적인 측면의 전문가보다는 도예 관련 전문가가 학교를 경영하여 도자 문화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 실시하려는 것입니다. 

한국도예고등학교 학부모님께서는 자녀를 한국도예고등학교에 진학시킨 입장에서 어떤 분이 교장으로 임용되는 것이 적절한지 의견을 말씀해 주시면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추진하는 개방형 교장공모제를 추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부디 심사숙고하여 아래에 찬성과 반대를 표기하여 5월 4일까지 회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랬다. 이 글은 자신이 이 학교의 교장으로서 한계를 알리고 교장공모제라는 새로운 틀과 제도에 학교를 맡기겠다는 사실상의 퇴임 선언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어느 누가 이런 용기를 보인 적이 있었단 말인가.  

교장공모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들이 많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금도 교장공모제가 교육의 전문성을 해치고 학교를 정치의 장(場)으로 변질시킬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한 신문의 사설은 이를 이렇게 꼬집고 있다.

“초중고교를 통틀어 공교육이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학교경영에서 중요한 것은 자격증 유무가 아니다. 학교의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에 답하는 비전을 제시하며, 학교 구성원의 역량을 결집해 교육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리더십과 책임감이다. 별다른 아이디어도 없이 학교의 현상 유지나 꾀하는 무능, 무기력, 무책임한 사람은 아무리 교사 교감으로 오래 근무했어도 교장 적격자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므로 “도예 전문가가 학교를 경영하여 도자 문화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 교장 공모제를 실시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가 전문가가 아닌 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학교의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했으며, “또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에 답하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리고 모름지기 반대를 무릅쓰고(왜 반대하는 의견이 없었겠는가) “교육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리더십과 책임감”을 보였다. 그 점에서 그는 “학교의 현상 유지나 꾀하는 무능, 무기력, 무책임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9월 이후 어느 학교 교장으로 다시 발령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분명한 “교장 적격자”였다. 아니 훌륭한 사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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