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 주간 논평
상태바
저널 주간 논평
  • 이천저널
  • 승인 2007.03.29 1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누가 그 촛불을 지킬 것인가

2007년 3월 23일, 장호원 읍내에서 한 남자가 죽었다. 이름은 한상혁, 나이는 쉰 넷. 객관적으로 보면 이 지구상에서 한 생명체의 죽음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인간 역시 생과 사를 삶의 조건으로 가진 많은 생명체 중에 하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 나의 가족이거나 가까운 이웃이거나 절친한 친구라면 우리는 깊은 슬픔에 잠긴다. 그리고 그 슬픔 속에서  그의 삶을 추모한다.

내가 알기에 그는 성실한 가장이었고, 믿음직한 남편이었고, 마을 일이든 조합일이든 늘 앞장서서 챙기는 헌신적이며 부지런한 농부였다. 농사 규모도 인동에서는 가장 컸다. 그는 과수 농사를 위해 생의 절반을 보냈다. 하지만 읍내 사람들이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과수원도 농약상회도 아닌 장호원 장터거리에서 열린 촛불 집회장이었다.

이천 시내 중앙통에서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열리던 하이닉스 증설 기원 촛불 집회를 이번부터 각 읍면을 돌면서 갖기로 했는데 그 첫 번째가 장호원이었다. 그날 장호원 장터거리에 가설무대가 설치되고 불이 밝혀지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식구들 저녁 밥 안치고 서둘러 나온 할머니에 퇴근 후 조합장과 함께 나온 농협 직원들, 병원에 다녀온다고 읍내에 나왔다 아예 눌러 앉은 어르신. 일찌감치 저녁 먹고 엄마와 함께 나온 아이들의 손에는 풍선도 들려 있었다.

한상혁 씨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일에 쫓겨 복숭아 전지 작업도 예년보다 늦게 마무리했고, 낮에는 작목반장들과 선진지 견학을 다녀와 몸과 마음이 몹시 지쳐 있었다. 하지만 하이닉스 증설 허용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에는 빠질 수 없었다. 행사 준비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장호원 주민들이 얼마나 참석해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집회는 기대 이상이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는 이런 장호원 주민들이 너무 자랑스러웠고 고마워 평소의 그답지 않게 지인들을 끌어안고 진한 악수도 나누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의 죽음이 촛불 집회 때문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앞으로 우리가 그의 부재를 아쉬워하며 그를 추억할 때 적어도 그날의 촛불 집회 이야기를 빠트릴 수는 없을 것이다.

장호원에서 열린 촛불 집회는 감동 그 자체였다. 주민들은 목소리를 높여 정부의 부당함에 항의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절제되어 있었고, 함께 손을 맞잡고 환호를 할 때는 이웃과 지역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충만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비록 지금은 너나없이 지치고 힘들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여느 시위처럼 경찰이 동원됐지만 그들이 한 일은 우두커니 서서 이 감동적인 시위를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주 사소한 질서조차 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흑인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다 1968년에 암살당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만일 장호원에서 열린 촛불 시위를 보았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만일 누군가 이천 사람들 속에 들끓는 이 생생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면 그 사람은 왜 이천에서 끊임없이 촛불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천 사람들은 억눌린 적의와 잠재된 좌절감에 휩싸여 있으며, 누군가는 이들을 풀어주고 달래줘야 한다.

따라서 그는 이천 시민과 함께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고 함성을 지르며 대열을 지어 행진하는 탄원자가 되어야 하며, 그 물결에 실려 가야 한다. 그리고 왜 이천 시민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만일 억눌린 감정이 이런 비폭력적인 방법에 의해서 풀어지지 않으면 그들은 폭력을 통한 표현을 찾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협박이 아니라 역사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천 시민들에게 당신들의 불만을 없애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오히려 나는, 이 정상적이고 건강한 불만을 비폭력적인 직접 행동으로 창조적인 출구를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그가 없는 촛불 집회는 그래서 계속되어야 한다.

이천저널
이천저널
webmaster@icjn.co.kr
다른기사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