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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주간 논평 Journal weekly commentary
  • 이천저널
  • 승인 2007.03.2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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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영어마을, 골프장 그리고 매니페스토

대선을 앞둔 탓인지 요즘 매니페스토라는 말이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달 1일에는 한 단체에서 ‘2007년 대선 매니페스토 물결운동 선포식’을 갖기도 했다. 심지어는 신랑과 신부가 ‘공약’을 주고받는 매니페스토 결혼식까지 벌어져 화제가 되고 있다. “비자금을 절대 만들지 않겠다”, “지금의 예쁜 모습을 잘 관리하겠다”는 것이 공약이 내용이라고 한다. 
매니페스토(manifesto)의 어원은 라틴어의 손(manus)과 치다(fendere)가 합성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니까 ‘손으로 어깨를 칠 만큼 직접적이고 분명하게’라는 뜻이 담긴 정치 용어다. 이 말이 정치적 선언의 의미로 사용된 것은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처음이며,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매니페스토란 말은 ‘이탈리아 공산당 선언’에서 사용된 이탈리아어 ‘manifesto’라고 한다. 지금은 성명이나 선언서란 뜻보다는 정당이 내거는 정권 공약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매니페스토 운동의 본산은 영국으로 토니 블레어 총리는 1997년 총선에서 설득력 있는 노동당의 매니페스토를 제시해 승리했다. 일본에서는 1998년부터 여러 차례 지방 선거에 도입해 정치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해 5·31 지방 선거를 치르면서 본격 도입됐다.

선거 때만 되면 후보자와 정당이 쏟아내는 실현 가능성도 없는 무책임한 선거 공약과 흑색선전에서 벗어나보자는 취지에 많은 시민들이 공감했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 대선에서도 있었다. ‘정책 선거’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노무현 대통령이나 조병돈 시장이나 모두 이런 정책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이들이 선거에서 내세운 공약들은 모두 지켜져야 마땅한가?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분권’과 ‘참여’, ‘국가 균형 발전’을 참여정부의 핵심 정책 사항으로 제시했고, 조병돈 시장은 ‘인구 35만 자족 도시 만들기’를 대표적인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그리고 조 시장의 ‘35만 자족 도시 만들기’는 노 대통령의 ‘국가 균형 발전’에 사실상 흔들리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하이닉스 이천 공장의 증설 불가다.

지금 조 시장은 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려 하고 있다. 영어 마을 만들기가 그것이다. 이 역시 조 시장의 공약 사항이었다. 그렇다면 후보자 시절에 내세웠던 모든 공약을 지키는 것은 선인가? 어떤 공약의 시행을 미루거나 변경하는 것은 악인가?   

매니페스토 선거가 선거 문화와 정치 수준을 선진화하는데 일조한 것은 분명하지만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다. 매니페스토란 단순한 선거 공약이 아니라 무엇을 언제까지 어느 정도까지 할 것인지, 즉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하고, 가능성과 타당성을 명시한 ‘사후 검증 가능한 명확한 공약’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보자들이 선거 때 만든 모든 정책들이 객관적이고 치밀한 연구와 검증을 거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뿐더러 그 정책을 세울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항상 일치하지도 않는다.

노 대통령의 국가 균형 발전은 총론에서는 얼마간 지지를 받는지 모르겠지만 각론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이천을 들끓게 만든 하이닉스 문제도 그 중 하나다. 조 시장이 50억 원을 들여 영어 마을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을 때는 영어 교육을 위해 관내 각급 학교에 25억 원이 넘는 재원이 원어민 교사 지원에 충당되지 않았다. 또 종합적인 지역 개발 로드맵도 없이 고용 창출도 못하면서 환경 문제만 야기하는 골프장 건립 사업을 고작 연간 수십 억원의 세수를 위해 이천의 2.5%나 되는 땅을 골프업자에게 내주겠다는 공약도 없었다.

매니페스토는 정치적인 판단을 내리는 하나의 기준일 뿐이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지지할 때는 그가 내건 모든 정책이 마음에 들어서라기보다는 그가 내건 공약의 정신으로 상황에 따라 합리적으로 정책을 펼쳐나갈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선견지명의 지도자가 예정한대로 군소리 없이 살아야 하고, 하이닉스 증설 문제로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어느새 기미가 끼고 뚱뚱해진 아내를 ‘공약’을 위반했다고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창기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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