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서의 발목 잡는 공부에 날개 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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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서의 발목 잡는 공부에 날개 달기
  • 이천저널
  • 승인 2007.03.2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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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속에 있는 ‘수학’으로 자연을 설명하기

(1) v=gt  (2) s=½gt2  (3) v=√2gs

왠지 아주 낯익은 공식들입니다. v는 속도, g는 중력가속도(9.8m/s2), t는 시간, s는 거리를 나타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 ‘떨어지는 사과’에 대한 공식들입니다. 공식(1)은 사과가 떨어지고 2초가 지나면 사과는 2초의 9.8배의 속도를 가지고 떨어지며, 10초가 지나면 10초의 9.8배의 낙하속도를 가지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공식으로 설명한 사과는, 사과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일 뿐 별로 감동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사과가 떨어진다.’, ‘A apple falls.’, ‘ v=gt’는 기본적으로 같은 사건을 다르게 설명한 것일 뿐입니다.

과학 과목에서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공식입니다. 외우고 외워도 잊어버리고 풀고 풀어도 막히는 공식들. 도대체 왜 누가 이런 것들을 이렇게도 많이 만들어 놓았는지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공식이 만들어지게 된 그 이면에는 ‘과학하는 정신’의 혁명적인 변화가 숨어있습니다.

>> 자연 관찰의 수량화가 근대 과학의 시작

위의 공식에서 v, t, s는 계속 변화합니다. 이것을 변수라고 합니다. 즉, 공식은 변수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방식’ 입니다. 현대에는 이런 관계의 방식을 ‘함수관계’라고 부릅니다. 바다 깊이와 수압, 수요와 공급, 기체의 압력과 온도 등은 서로 함수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함수 속에는 무한개의 정보가 들어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식(1)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떨어지는 모든 것(사과건 공이건 별이건)들의 시간-속도에 대한 관계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식은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측정입니다. 갈릴레이(뉴턴이 아니다)는 떨어지는 물체를 관찰하면서 물체의 속도가 시간에 따라 빨라지고 그 관계가 항상 일정하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속도와 시간을 측정하여 위의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측정’이란 자연 현상을 숫자로 나타내는 행위입니다. 숫자로 나타낸다는 것은 자연을 질(質)이 아닌 양(量)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數)+양(量)=수량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자연관찰의 결과를 수량화하려고 최초로 시도했던 사람은 갈릴레이입니다. 그리고 이 시도가 근대과학의 진정한 시작을 이루었습니다. 갈릴레이 이전의 과학자들은 자연을 관찰하면서 ‘원인’, ‘결과’, ‘목적’, ‘본질’ 등만을 묻고 고민하였습니다.

갈릴레이 이전에는, ‘눈이 내린다.’, ‘왜 눈이 내리지?’, ‘신의 섭리야!’ 혹은, ‘우주의 조화야!’ 라는 식으로 우주를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즉, 갈릴레이의 시도는 단순히 ‘떨어지는 사과’만을 설명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고 한 것입니다.

갈릴레이가 찾아낸 새로운 방법은 이렇습니다.

1) 자연에서 수량화 할 수 있는 정보를 분리한다.
2) 각 정보들 간의 관계를 관찰하여 관계(공식)를 만든다.
3) 수학적 표현을 이용하여 기본법칙을 정한다.
4) 기본법칙(기본공식)들을 변화시켜서 새로운 물리적 관계를 찾아낸다.

다시 강조하지만, 공식은 자연의 ‘상태와 진행’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지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는 사과가 왜 떨어지는지, 언제 떨어졌는지, 어디로 떨어지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떻게 떨어지는지에 대한 ‘수량’적 정보만을 줄 뿐입니다.

갈릴레이는 자연을 설명할 수 있는 공식을 만들려고 하면서 ‘그렇다면 과연 어떤 수량들이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인가?’, ‘수량화할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것들인가?’,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꿀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즉, 자연에서 측정할 수 있는 측면을 어떻게 떼어 놓을지를 고민한 것입니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갈릴레이는 공간, 시간, 무게, 속력, 가속도, 관성, 힘 등과 같은 개념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관성과 같은 개념은 사물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개념은 관찰을 통해 상상하고 추론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상과 추론으로 과학의 개념이나 원리를 생각하는 것을 ‘사고(思考)실험’이라고 합니다.

>> 갈릴레이의 사고 실험

갈릴레이의 잘 알려진 사고실험 중에 하나는 교과서에 항상 등장하는 관성을 추론한 사고실험입니다. 이 실험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마찰을 무시할 수 있는 빗면 위에 작은 구슬을 놓으면 구슬은 반대쪽 빗면의 같은 높이까지 올라간다. 반대쪽 빗면의 경사를 낮게 하면 구슬은 같은 높이까지 가기위해 더 많은 거리를 굴러가게 된다. 만약 반대쪽 빗면을 수평으로 만들면 구슬은 수평면을 따라 무한히 굴러가게 된다. 즉, 구슬은 바닥의 마찰이 없다면 영원히 등속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갈릴레이가 손을 댄 이런 개념들은 갈릴레이 이전 시대의 과학에서 말하는 본질, 인과, 목적처럼 수량화할 수 없는 것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들입니다. 갈릴레이가 창안한 이런 개념들은 훗날 합리주의의 토대가 되었고,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는데 신(神)의 도움을 정중하게 사양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자연에 대한 갈릴레이의 접근에 있어 또 다른 특징은 자연을 수학적으로 패턴화 시키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기하학의 공리처럼 일단 자연에서 공리적 기본법칙들을 발견하면 이런 법칙들로부터 다른 진리들을 연역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그는 믿었습니다. 위의 공식(1)과 (2)가 주어지면 공식(3)은 측정이나 증명 없이 ‘순수’하게 수학적으로 유도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수학적 조작만으로 떨어지는 사과의 속도-거리 관계, 즉 자연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드러난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연현상에 대한 수학적 패턴화가 갈릴레이의 과학과 이전 시대의 과학 간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둘 다 똑같이 움직이는 물체를 관찰했지만 갈릴레이 이전에는 실제로 관찰한 것을 통해 자연을 설명하려 했고, 갈릴레이는 자연 현상의 어떤 측면은 부각시키고 어떤 측면은 무시하는 수학적 이상화를 꾀했습니다. 수학자들이 곧게 뻗은 줄을 보고 ‘길이만 있고 폭은 없는 선분’을 이상적으로 개념화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갈릴레이에 의해 머릿속에 있는 ‘수학’이 머리밖에 있는 ‘물리(자연)’를 설명하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과학의 언어는 수학’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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