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서의 발목 잡는 공부에 날개 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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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서의 발목 잡는 공부에 날개 달기
  • 이천저널
  • 승인 2007.03.16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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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잘하려면 수의 개념을 충분히 감상하라

수학과 과학 과목은 개념과 원리가 중요한 과목이라고들 합니다. 어떤 이는 이해 과목이면서 동시에 암기 과목이라고도 합니다. 과목이 무엇이건 기본 개념을 우선 이해하고 다음에 원리와 응용을 배워 나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학습지, 학원, 인터넷, 방송 등에서 개념과 원리에 대한 새로운 공부 방법이 발견이라도 된 양 요란하게 강조하는 말들이 많이 들립니다. 마치 전에는 개념과 원리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다는 듯이 말입니다.

>> 개념은 모든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약속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학교에서는 분명히 개념을 먼저 가르치고 나서 원리와 응용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개념에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개념을 충분히 곱씹으며 공부하지 않아서,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기본 개념에 대한 자신의 부족한 이해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지나친 선행 학습 때문입니다. 미리 배우면 당장은 다른 친구들보다 웬만한 문제풀이는 잘 할 수 있겠지만, 정작 진짜 실력이 필요한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개념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개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개념을 깊이 공부한다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요? 수학 시간에 배우는 수(數)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 ●, 一, One, Ⅰ, 5/5, 쵍, ★

위의 글자와 그림들을 찬찬히 보십시오. 생각 속에서 무엇이 떠오르나요? 위의 기호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공통적인 ‘그 무엇’이 떠오르죠! 구체적인 기호로 표현되기 전에 우리 머릿속에 떠오른 ‘그 무엇’이 바로 개념입니다. 이렇게 공통의 개념을 떠올리는 인간의 능력을 ‘추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제각기 떠올린 공통의 개념을 소통하기 위해 약속된 것이 언어, 글자, 기호입니다.

개념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미술의 개념은 주로 시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음악은 청각, 체육은 촉각적인 개념과 주로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학의 개념은 순수하게 머릿속에서만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수학의 도형에서 배우는 점과 선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수학의 점은 크기가 없고 선은 폭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학의 점과 선은, 연필로 찍은 점이나 긴 끈을 눈으로 보고 추상하여 우리 머리가 만든 것입니다.

수학(과학)에서는 기본 개념이 다른 과목에 비해 특히 더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수학은 ‘가능한 적은 기본 개념’으로 다른 개념과 원리를 만들어내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점과 선에 대한 개념을 모르면 삼각형의 개념을 알 수 없고, 삼각형의 개념을 모르면 정사면체에 대한 개념을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수학은 분명하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기본 개념을 토대로 조금씩 수준을 높여가며 고급한 개념을 만들어 갑니다. 따라서 각 수준의 개념이 부족한 상태에서 배운 원리나 응용 실력은 모래로 쌓은 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개념은 ‘푸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는 것’

다음으로, 개념을 깊이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개념은 ‘푸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면서 익혀야 합니다. 수학시간에 소수와 소인수 분해라는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1) 소수: 1과 자기 자신만을 약수로 갖는 자연수.
(2) 소인수분해: 어떤 자연수를 소수들의 곱으로 표현하는 것.

(1)은 소수의 개념을 풀어서 설명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정의’라고 합니다. 그리고 (2)는 소인수분해에 대한 설명입니다. 우리는 흔히 소수를 공부하고 곧 이어 소인수분해를 공부합니다. 사실 (1) 정도의 소수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면 소인수분해를 이해하는데 별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가볍게 이해하고 넘어간 소수의 개념은 소인수분해 문제를 풀기 위해 공부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수의 개념’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스스로 너무 빨리 단정해 버린 결과입니다.

이런 공부 방법은 개념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는데 부족합니다. 마치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를 힐끗 한 번 보여주고, 바로 이어서 모네가 그린 ‘해바라기’와 비교하라는 어이없는 문제와 같습니다. 그림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보고, 느끼고, 상상해야만 자신만의 감상과 이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다른 태양의 빛으로 그린 것이 분명하다.
열정적이다. 스스로의 열기에 꽃들은 지쳤다.
(하지만 이 별에 사는 사람들 중, 많은 이는 저 별에서 왔다. 그래서 저 꽃을 좋아한다.)
모네의 해바라기는 이 별의 태양빛을 담고 있다.
자유롭고 소박하지만, 위엄을 지닌 꽃이다.
수학의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개념은 다른 개념과 원리를 배우는 기초가 되기도 하지만, 그전에 각각의 개념이 가지는 독특한 논리의 향(香)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몇 해 전 어느 대학의 논술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소수의 서로소의 개념과 화학의 원자론을 비교하라.’ 얼른 문제를 풀기 위해 소수를 공부한 학생들에게는 정말 답답할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서로소: 최대공약수가 1인 두 자연수).

소수는 수학사에서 수학자들을 가장 골치 아프게 만든 녀석 중의 하나입니다. 유클리드, 페르마, 가우스, 오일러 등 전설적인 수학의 천재들을 미궁 속에 몰아넣었고, 아직도 소수와 관련된 많은 문제들은 미해결 상태로 있습니다. 절대로 간단한 개념이 아닙니다.

그럼, 소수의 개념을 편하게 나름대로 감상해 봅시다. 그 전에, 문제풀이에는 정답과 오답이 있지만 감상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소수는 1과 자신뿐이다. 1은 모든 수의 탄생지! 어머니 대지(大地)이다. 소수에게는 대지로 돌아가는 길이 늘 분명하다. 하지만 소수는 외롭다. 가족도 친구도 없다(합성수와 달리...). 소수는 강하다. 독립적이다. 자기보다 아무리 큰 수를 만나도 소수는 기죽지 않는다.

소수는 늘 이렇게 당당하다. 소수는 모든 수를 이루는 씨앗(소인수)이다. 희생이다. 수의 세상을 연결하는 마디이며 고리이다. 물질 속의 원자처럼, 우주의 별들처럼, 시(詩)의 단어처럼, 컴퓨터 모니터의 픽셀처럼...

문제풀이의 수단으로서 개념을 공부하면 충분히 개념을 감상할 시간이 자연히 부족하게 됩니다. 당장은 문제를 풀기 위해 진도를 따라가야만 할 때도 있겠지만 시간을 내어 작은 개념부터 천천히 감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개념과 개념을 연결하여 화려한 원리와 응용의 집을 지은 수학 선배들의 상상과 창조를 온전히 배울 수 있습니다.

수학을 공부하면서 오답노트를 따로 만들어서 틀린 문제를 다시 점검하는 습관을 가진 학생들이 많습니다. 좋은 습관입니다. 하지만 개념을 공부할 때는 감상 노트가 필요합니다. 오늘부터, 해바라기의 감상 옆에 소수의 감상을 써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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