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 주간 논평 Journal weekly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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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주간 논평 Journal weekly commentary
  • 이천저널
  • 승인 2007.03.0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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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이천 시민이여, 일상으로 돌아가

IMF 이후 하이닉스 반도체가 마이크론으로부터 헐값 매각 위기에 있을 때 이천 시민들이 하이닉스를 회생시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것은 단순히 지역 상권 지키기 차원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회생을 위해 4년 동안 하이닉스는 임금 동결과 휴직을 단행했고, 그 여파로 이천의 상권 역시 숨죽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에 얼마나 많은 기업과 상점들이 문을 닫았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직의 고통을 겪었는가. 그 점에서 ‘하이닉스’라는 말에는 우리의 반도체 기술력의 해외 유출을 막고 민족 경제를 살리자는 이천 시민들의 여망이 담겨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하이닉스가 오랜 고난의 시간을 견디고 세계 굴지의 반도체 기업으로 회생해 공장을 증설하겠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그것도 기존의 공장 옆에 남은 부지가 있고, 또 발전소 같은 기반 시설과 연구 센터가 있어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얼마나 기쁜 일인가. 게다가 일자리도 6000개나 늘어나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또 국가 경쟁력에도 기여한다니 이천 시민들이 하이닉스를 바라보는 심정이 남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만큼 하이닉스가 이천에서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그러나 하이닉스의 이천 공장 증설 계획은 정부의 수도권 규제와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좌절됐다. 누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수도권에 공장증설은 안 된다.”는 대통령의 한마디 때문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환경 문제 때문이라고도 했다.

정부의 논리에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됐다. 반도체 공정에서 나오는 구리 배출 문제를 든 환경부로서도 곤혹스러울 만큼 다양한 반론들이 제시됐으며, 청주와 이천의 경제 환경을 들어 균형 발전의 허구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경기도는 일본의 수도권 정책과 광역 행정을 비교하면서 1985년에 이미 “수도권 정비 계획의 실효성이 미흡하고 동경을 중심으로 한 문제는 각종 규제 정책으로 해소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으며, 또 1976년 IMF를 겪은 영국의 예를 들어 “수도권 규제가 국가 경쟁력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판단으로 수도권 규제 정책 수단들”을 폐지했음을 강조했다.  

이천 시내 중앙통에서 매주 갖는 촛불 시위가 벌써 여섯 번째를 기록했고, 이번주 금요일에는 여성단체의 주최로 일곱 번째 촛불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수천 명의 시민들이 100여 대의 버스로 상경해 삭발을 하는 대규모 시위도 벌써 두 번이나 했다.

처음 해보는 시위에다 추위 때문에 소주 한잔이라도 걸쳐야 울음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가슴 벅찬 시위를 마치고 무표정한 서울의 도심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다시 시골로 내려오는 차 안의 분위기는 더 허탈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시민들의 순결하고 어설픈 시위가 많은 취재진들로부터 진정성을 얻기도 했다. 모두 한 달 남짓 되는 기간에 일어난 일들이다.

이천 시민들이여, 자랑스러웠다. 우리는 정부 정책의 부당함에 대해 당당하게 항의했고, 제때에 우리의 단결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청와대나 정부에도 우리 이천의 사정이 충분히 전달됐으리라. 독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리히 캐스트너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굶주린다고 빵장수가 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해서 모두가 빵집 주인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하이닉스 증설 문제가 다급한 민생 문제라 하더라도 이천 시민 모두가 거리의 투사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이천의 미래가 불안하다고 해도 이천 시민 모두가 삭발을 하고 파업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전쟁 중에도 사람들은 요리를 하고,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또 아이들은 학교에 간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20세기의 대전도 이것만은 막지 못했다. 이것은 그 어떤 이념이나 명분보다 우선하는 삶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일은 지도자들에게 맡기고 일상으로 돌아가자.

위기의 순간에 지도자들은 침착하고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당장의 현안도 중요하겠지만, 언제까지 철시를 하고, 삭발을 하고, 촛불 시위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협상력을 갖지 못한 지도자들만이 시민들의 삶을 볼모로 삼고 그 뒤에 숨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분위기에 편승해 제 이익이나 챙기려는 모리배나 삼류 정치인들이 있는지도 예의주시하라.
이제 남은 것은 정부와의 대화이고 협상이다. 그것은 비굴한 일도 아니고 떳떳하고 정당한 일이다. 그 일을 수행할 지도자들을 신뢰하고, 신이 그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도록 기도하자. 바로 여기에 이천의 민생과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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