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교실 / 다산고등학교 수학교실
상태바
유쾌한 교실 / 다산고등학교 수학교실
  • 이천저널
  • 승인 2007.02.01 1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학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2학기 학기말 고사 수학 시험을 보는 날. 시험이 끝나고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갈 무렵, 내가 가르치는 이과반의 한 남학생이 교무실로 내려왔다.

“선생님 제 OMR카드 좀 볼 수 있을까요?”
내가 불러주는 정답과 자신이 표기한 OMR 카드 답안을 비교하던 K군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어휴……. 다 맞은 줄 알았는데 너무 긴장해서 76점 밖에 안 나왔어요. 마지막에 덧셈 계산도 잘 못하고 어떤 문제는 표시도 틀리게 한 것 같아요. 다 아는 문제들이었는데……. 이상하게 아는 문제들이 나오면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더 이상 계산이 안 돼요. 아무것도 안 떠올라요.” 

긴장을 너무 한 나머지 실수를 많이 했다고 아쉬워하는 K군이 공부 잘하는 학생의 유별난 투정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너무 소심한 성격을 가진 학생의 행동처럼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K군이 마치 이제 막 노란 털이 여기저기 빠지고 조금 긴 흰 깃털이 돋아나는 성장기의 병아리처럼 기특하고 소중한 존재로 여겨졌다.

내가 두 해째 연이어 가르치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인 K군은 이과반 학생이다. 고1 때의 수학 성적은 중위권으로 그리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2학년이 되고나서부터 K군은 달라졌다. 2학년 첫 모의고사 수리 영역에서 반 1등을 한 것이다. 처음에는 중위권의 성적은 변동이 많아 일시적인 것이려니 여겼는데 K군은 나날이 달라져 가면서 나에게 더없이 큰 기쁨을 주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수학 공부를 하다 조금 어렵다 생각되면 쉽게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다.
하지만 이해와 반복을 통해 어느 정도의 선을 넘으면 다음 단계에서 전체를 볼 수 있을 만큼 사고가 크게 발달하게 되는 학문이 수학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을 끊임없이 수학과 접촉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스스로 문제를 분석해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나는 수업이 시작되면 학생들에게 지난 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간단한 시험을 통해 확인시킨다. 물론 평가 결과는 수행 평가에 반영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평가가 아니라 평가를 정리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니만큼, 쪽지 시험이건 기말 고사건 간에 틀린 문제를 5번씩 반복하는 과제를 내주고 매일 노트 검사와 오답 노트를 통해 정리된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여 학생들에게 한줄 메모를 남긴다.

내가 가르치는 모든 학생들의 노트를 매일 검사하여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하기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이 중에서 불성실한 학생들은 따로 남겨서 짬짬이 보충 수업을 하고 과제를 내주며 또 다시 확인을 한다. 누적된 내용을 시험을 통해 반복 학습하고 오답 노트를 통해 스스로 분석해보는 습관은 수학 학습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라 생각된다.

어느 순간 원리를 깨우치는 학생들은 점차 자신감을 가지고 달라진 눈빛으로 수업에 임하게 되는 것을 보았을 때, 비록 보충 수업에 몸은 지쳐 있지만 그 보람만으로 활기를 되찾게 된다.

나는 시기를 정해서 학생들에게 혼자서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 단계마다 좋은 교재 몇 가지를 추천해주는데, 다른 학생들 대부분이 그냥 그때만 잠깐 관심을 갖고 듣기만 할 뿐이지 직접 실천하는 학생은 적다.

그러나 K군은 그것을 놓치는 법이 없다. 늘 나의 말을 메모하고 직접 교재를 사들고 와서 어떤 식으로 문제집을 풀 것인지 계획을 상의해 온다. 나와 매일 노트를 통해 많은 대화를 하며 자신의 공부 상태를 알려주고 조언을 구한다. 수업시간에는 늘 나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고 50분 수업시간을 나와 일대일로 수업을 하듯이 열중하는 K군 같은 제자들을 만나는 것은 교사로서 큰 기쁨이자 축복이라고 생각된다.

▶ ‘왜’, ‘어떻게’로 관심을 유도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각 단원의 중심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왜’ 와 ‘어떻게’ 를 통해 단원에 대한 관심을 유도한다. 이번 기말고사 범위였던 ‘다항함수의 미분법’ 단원에서는 왜 우리가 이 단원의 내용을 배워야하는지 지난 시간의 단원이었던 ‘수열의 극한’과 ‘함수의 극한’을 다시 짚어보았다. 수열의 극한에서 변수을 다항함수의 극한에서는 정의역의 원소로 확장하여 설명하고, 기하학적으로 그래프를 그려봄으로써 함수의 극한에 대한 개념 이해를 돕도록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틈틈이 연수를 통해 익혀 만들어 놓은 ICT-그래프와 도형 파워 포인트를 활용한다. 학생들은 화면을 통해 미분의 의미와 함수의 극한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고 장기적인 기억을 할 수 있다.

내가 단원의 도입 부분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써서 지도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학생들이 왜 배우는지 어떤 방법을 통해서 배우는지를 처음부터 확실히 숙지한다면 그 다음 단계의 응용이나 계산은 큰 어려움이 되지 않는다.

짧은 50분 동안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어떤 수학적 관계를 심어주고 작은 깨우침을 통해 학생들이 단원을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학생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알차게 선택하며 살도록 돕는 것과 같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확신을 가지고 성실히 노력하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백 마디 천 마디 훈계하는 말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모범이 된다는 것을 나는 나의 학창시절 은사들을 통해 알고 있다.

이런 내 마음과 통하는 제자를 만나는 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큰 행복이다. K군이 자신감을 갖고 수학을 푸는 것처럼 말 그대로 자신감으로 밝고 적극적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친구들에게 점차 인정받고 존중받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아름답다는 것이 어떤 건지를 새삼 느낀다.

어느 해에는 K군과 같은 학생을 여러 명 만나게 될 때도 있고, 어느 해에는 수학 실력과 관계없이 마음이 통하는 제자를 한 명도 만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에는 좀 더 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수학사를 뒤져보거나 수학 연구 모임을 통해 나름대로 부족한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본다.

교직에 첫발을 디딘 나에게 나의 대학원 지도교수님께서 격려의 뜻으로 “수학은 가르치는 교사에 따라 학생들이 크게 달라지는 과목”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이 말을 거울삼아 늘 나를 비춰본다. 그리고 내가 수학이라는 학문을 사랑하는 만큼 학생들이 교사인 나를 통해 수학적 사고의 가치를 소중히 깨우치기를 바라는 마음에 뭔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글|변소영

이천저널
이천저널
webmaster@icjn.co.kr
다른기사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