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구의 우리말의 멋과 맛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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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구의 우리말의 멋과 맛 <6>
  • 이천저널
  • 승인 2007.01.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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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이 어디 있었더라?

안녕하세요? ‘논술이’입니다. 누구냐고요? 왜, 저기 다음 페이지에 실리는 ‘왈가왈부 꼬리치는 논술’에 나오는 멍멍이 있잖아요? 개의 해가 다 가기 전에 한 마디 하려고요. 병술년! 이제 다 저물었네요. 뭐, 특별히 아쉽다고 할 건 없어요. 연초에 덕담들 많이 들을 때에 하릅강아지들은 좀 들뜨기도 했겠지만, 철든 멍멍이들은 다 알거든요. ‘사람도 12년에 한 번은 좋은 소리 한다’는 우리 동네 속담 말입니다. 올해에도 여전히 개 대접 받았습니다. 뭐, 괘념치는 마세요. 어제 오늘 일 아니니까요. 하찮은 것, 못된 것의 대명사가 우리라는 거 잘 알고 있거든요. 오죽했으면 속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엑스트라가 우리이겠어요?

속담 속에서도 우리 팔자가 상팔자인 경우는 드물지요. 개 꾸짖듯, 개 패듯 한다는 말이 생겼을 만큼 많이 맞았고 야단도 많이 들었습니다. 굶기도 많이 했지요. 정월 대보름에 우리한테 밥 주면 여름에 파리가 많아진다고, 정말 비과학적인 논리로 굶기곤 했지요? ‘개 보름 쇠듯’ 한다는 속담이 그거잖아요? ‘개 발에 버선, 개 목에 방울, 개에 남바위’라는 말을 만들어 진주목걸이 건 돼지처럼 취급하기도 했지요? 그러려니 하고 살지만 사실 방울이나 남바위, 우리도 좋아하지 않아요. 버선은 또 얼마나 불편한지 아세요? ‘개에 호패’라는 속담도 쓰나 보던데, 우린 주민등록 안하고도 잘 살아요. 우리가 인감 뗄 일이 있나, 은행 가서 대출 받을 일이 있나…. ‘개 하고 똥 다투랴’ 하는데 우리도 방울 가지고 다투고 싶지 않아요.

‘개 못된 것이 장에 가서 짖는다’고들 하는데 집 잘 못 지키는 친구들은 제가 잘 타이를 게요. 하지만 말 나온 김에 좀 따져야겠네요. 다른 건 몰라도 ‘개는 인사가 싸움’이라는 말은 좀 쓰지 마세요. 아마 여의돈가 어딘가 큰 집에 모여 싸우는 사람들 때문에 그런 말 쓰는 모양인데, 우리 멍멍이들은 싸우는 게 아니에요. 반가워서 그러는 거지요. 몰라요? 애정 표현! ‘도둑이 들려니 개도 안 짖더라’는 대통령 말씀도 들었어요. 그렇지만 정말 짖어야 할 때엔 확실히 짖는다고요. 삼국유사에 있잖아요? 백제가 멸망하기 전 사비성의 개들이 왕궁을 향하여 슬피 울었다는 기록! 멍멍이들의 예지 능력, 무시하지 마세요. ‘집에서 기르는 개가 슬피 울면 초상이 난다’하여 팔아버릴 줄은 알면서….

하여간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고요. 혹시 약에 쓸 일 생길지 모르니 개똥도 가끔 챙겨 놓으시고요. 그래도 주인 보고 꼬리 치는 건 ‘논술이’잖아요?
/ 프리랜스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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