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함하는 개념, 포함되는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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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함하는 개념, 포함되는 개념
  • 이천저널
  • 승인 2007.01.0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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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에서 논술 따라잡기

우리는 제시된 문제에 답을 하기 위해 자신이 사용한 용어의 의미를 명백히 하기 위해 사전에서 풀이한 정의를 인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사전적 정의들은 대개 너무 모호하거나 적절치 못해 별 도움이 되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을 겁니다. 이럴 때 여러분 스스로 의미를 규정하십시오.

정의는 한 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요약해서 표명하는 한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논증해야 할 특별한 쟁점을 확실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쓸모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논제가 정해지면 우리가 논증하려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시키기 위해 주제를 발의할 때 사용된 주요 용어들을 먼저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념이란 어떤 대상이나 현상의 공통된 성질을 하나의 기호로 결합시킨 관념을 말합니다. 쉬운 예로, ‘산’이나 ‘바다’, ‘사람’, ‘산다는 것’, ‘각이 셋으로 된 것’과 같은 대상이나 현상을 지시하는 데에 사용되는 명사나 구는 모두 개념입니다. 일반적으로 문장은 두 명사와 그것을 연결시키는 계사(繫辭:이음말)로 구성됩니다. 따라서 정의(定義) 역시 이 같은 문장 형식의 영역 안에 있습니다.

이 같은 일반 논리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개념의 부류 가운데 하나인 유개념과 종개념입니다. 유개념(Genus)이란 ‘포함하는 개념’을 말하며, 종개념(Species)이란 ‘포함되는 개념’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남자와 사람, 구리와 금속의 관계에서 사람과 금속은 남자와 구리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유개념이고, 남자와 구리는 사람과 금속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종개념입니다. 

이 관계 개념에 주목하는 이유는, 우리가 개념과 개념의 비교를 통해 개념을 정의할 때 마땅히 그 개념의 공통된 성질에 유념해야 하며, 그 공통된 성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두 개념의 포함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논의의 쟁점을 명확히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법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고 가정해보지요. 당신은 당신의 화끈한 기질과 달리 한번에 명쾌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한 질문에 담긴 ‘법’이란 개념의 영역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질문을 받은 사람이 소크라테스였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요?

“법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라고 묻기 이전에 당신은 먼저 ‘법’이란 말이 자연의 조화를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써 과학의 법칙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 사회의 예의 또는 국가의 강제력이 따르는 온갖 규범을 말하는 것인지를 먼저 언급해야 합니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유개념의 하위 논점이자 정의의 하위 논점에 기초한 논법에 호소한 것입니다. 그러나 정의에 대한 논점은 쟁점을 명확하게 만드는 데에 뿐만 아니라 논법을 생각해내는 데에도 유용합니다.  

명제의 속성은 일반화시킨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를 테면, “한국인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또는 “낙태는 사회에 대한 하나의 범죄다”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때 ‘한국인’ 또는 ‘낙태’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 정의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범위는 용어에 의해 고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명제로 우리는 하나의 논법을 펼칠 수 있습니다. 곧 무엇이 유개념의 진실이며 종개념의 진실인지를 구별하는 원칙을 유도해 낸다는 데에 유개념이라는 논점의 수사학적 힘이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가 사람이라면 그 역시 죽는다는 논법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유개념에서 비롯된 고전적인 논법 하나를 소개하지요.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이 소유한 모든 은을 그의 부인에게 유언으로 양도했다면, 그의 변호사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은으로 만든 모든 쟁반과 장식물 그리고 촛대뿐만 아니라 그의 금고 속에 있던 은화까지 그의 부인에게 줄 작정이었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접시와 장식물, 촛대는 물론이거니와 은화 역시 은의 한 종류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유개념과 종개념이 잘못 짝지어진 예를 들어보지요. “하늘 천 따지”로 시작되는 『천자문』은 중국 양(梁) 나라의 무제(武帝)가 주흥사라는 사람을 시켜 만든 책입니다. 이 책이 만들어진 배경은 이렇습니다. 양 무제는 왕희지의 초서를 워낙 좋아해서 왕희지의 글씨라면 탁본을 해서라면 모두 모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천 자도 넘는 이 많은 초서 글자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기억할까 하는 궁리 끝에 주흥사에게 여덟 글자마다 운을 달아 기억하기 쉽게 만들도록 했다고 합니다. 『천자문』이 초서 학습의 기본 교재로 많이 활용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글자를 짜 맞추기 위해 조합된 『천자문』을 거창한 철학적 이념이나 우주의 이치를 담은 글로 읽을 때에 우리는 혼란에 빠집니다. ‘천지가 검고 누렇다(天地玄黃)’는 말에서부터 말입니다. 천지(天地)가 나왔으면 일월(日月) 성신(星辰)이 나와야 개념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지 색을 말하는 현황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다산 선생의 지적입니다. 그래서 다산 선생은 “처음 배울 때 천자문을 읽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제일 나쁜 습속이다”라고까지 말한 바 있습니다.        

논술의 제재로 쓰인 용어의 유개념은, 단순하게 말하면, 그가 제시한 분류의 원칙이 참이라고 받아들일 경우에 한해서 하나의 ‘증거’로 구성됩니다. 한 기자 회견장에서 사용자가 ‘부당하게’ 노동자를 해고했다고 주장해야 할 노조위원장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자신들의 주장에 동의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노조위원장이 대다수의 국민들로부터 그런 준비된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면 그는 자신의 분류가 옳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해야 합니다.  
논법에서 정의는 논법을 끌어나갈 하나의 전제와 같습니다. 따라서 전제로서의 정의는 이 제안에 동의하거나 그렇지 않든 간에 우선 그에 따른 논증으로서의 진술을 허용하고 감시하는 일차적인 규범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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