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구의 우리말의 멋과 맛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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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구의 우리말의 멋과 맛 5
  • 이천저널
  • 승인 2006.12.2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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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은 늘 거북이 부럽고
인걸은 지령(地靈)이라고들 했지요. 산수 좋은 곳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장군 집에서 장군 난다! 뭐, 그런 말이지요. 반기문 씨가 유엔의 사무총장으로 뽑히자 언론들은 그 이가 태어난 곳의 풍수지리를 들먹이며 이런 속담들을 써먹었습니다.
해마다 이 무렵쯤이면 ‘개천 출신 용’들의 인터뷰 기사가 신문 지면을 장식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가난을 이기고 대학에 수석 합격’ 같은 얘기 말입니다. 지금은 그런 일이 드뭅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군요. 서울대학교 가려면 강남 살아야 한다나요, 뭐라나요? 공부도 돈 있어야 한다는 말이 새로운 속담으로 등극하는 건가요? ‘돈이 장사라, 돈이 제갈량이다, 돈 있으면 염라대왕 문서도 고칠 수 있다, 돈 많으면 처녀 불알도 살 수 있다.’ 예부터 내려오던 속담들이 이만한 걸 보면 돈의 힘은 오래된 권력입니다. 산수가 인물을 만든다는 것이 풍수지리라면 돈이 인물을 만든다는 주장은 신종 경제지리인가요?
그렇지만 세상 이치가 그리 쉽게 바뀌겠어요? 여전히 금(金)은 광석에서 나오고 진주는 지금도 개펄 속 조개에서 나옵니다. 부잣집 아이들의 성적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해서 그 결과를 오직 돈의 힘으로만 볼 수는 없겠지요. 강남 아이들이라고 다 서울대 들어가는 건 아니잖아요? 남 가진 거 별스레 부러워하지 마세요. 남 없는 거 내가 가졌다고 뻐기는 것도 점잖지 못하고요. 온 세계를 드넓은 일터로 삼았던(지금은 불행히 좁은 방에 계시지만) 어느 기업인의 말처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할 일’을 ‘돈 벌 일’로 오독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서울대가 공부의 유일한 목표도 아닐뿐더러 부자가 삶의 목적이 될 수도 없는 거지요.(이 대목에서 ?를 떠올린 독자께서는 이천저널을 꼬박꼬박 읽으시길!)
수능시험의 후유증이 아직 덜 아무셨겠지요? 그래요, 학도 거북이 나이를 부러워한다더군요. 그게 세상이지요? 그렇지만 아기 가진 새댁도 밥 안 먹으면 배가 고프단 말입니다. 문제는 부른 배도 고픈 줄 누가 좀 알아 달라 그런 말이지요.
/ 프리랜스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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