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우의 왈가왈부, 꼬리치는 논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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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우의 왈가왈부, 꼬리치는 논술 <3>
  • 이천저널
  • 승인 2006.12.0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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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달걀에 담긴 탐욕

나는 논술이가 언제부터 감자탕을 좋아했고, 감자탕의 어느 매력에 자신의 미각을 일임했는지 알 길이 없다. 논술이가 제 나이를 밝히지 않았으니 그가 보고 듣고 겪은 경험의 폭을 재어보기도 어렵다. 어쨌든 남이 맛나게 먹은 음식을 앞에 두고 내 식성을 잣대로 이러니저러니 참견해서야 썩 바람직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본들 배고픈 쪽은 내가 아닌가. 그러거나 말거나 논술이가 한동안 잠잠하던 식욕을 내세워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맛있었어. 이제 라면 하나만 더 얼른 먹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어렵겠지?”

“감자탕을 먹지 않았다면 넌 배고픔을 조금도 참지 못했을 거야. 그런 상태에서 네게 라면을 줬다면 넌 어떻게 했을까?”

“아, 알았어. 라면 얘기는 취소하자고. 그냥 공부나 하지.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하다고 그랬나?”

“아마 넌 물이 끓기를 기다리지도 않았겠지. 찬물에 바로 넣고 끓이면 좀 더 빠르게 먹을 수 있으니까. 그 방법은 삼촌한테 들었지?”

“냄비 없이 끓여 먹는 방법도 있다며? 가능해?”

“군인들이 창의적으로 라면을 끓여 먹은 방법이랄 수 있지”

“생라면을 먼저 먹고 뜨거운 물을 마시면? 뱃속에서 익는 건 같잖아? 그것도 창의적이지 않나? 차이가 뭐야?”

“흔히들 기발하거나 특이한 아이디어를 보고 창의적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 남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대안이나 해결책이라고 다 창의적이라 할 수는 없어. 튀는 생각 중에는 실현 불가능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것도 있으니까.”

“알겠어. 근거나 주장에서 객관적인 타당성을 지니란 말이잖아. 상식에 도전할까?”

먹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었지만 논술이가 그만 산만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는 덧붙였다.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 들어봤지?”     

“날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야. 발상의 전환! 진작 그걸 예로 들어주었으면 더 쉬워졌을 걸.”
“뭐가 쉬워져?” “

“내가 먹을 궁리만 하고 있을 때 콜럼버스는 독창적인 사고를 했다, 그 말을 하고 싶은 거 아냐?”

“최초의 발상 전환이 어렵다는 메시지 자체는 누구나 알고 있어. 너무 유명해져서 이제 그 달걀은 상식을 넘어선 발상이 아니라 상식 자체가 되었단 말이야. <콜럼버스여, 달걀 값 물어내라>는 글이 주목한 내용을 보자구. 달걀 겉모양이 어떻게 생겼니?"

"주목하나마나 타원형이지 뭐. 별 걸 다 묻네. 타원형을 설명하란 말은 하지 마."

“타원형은 애초에 세울 이유가 없도록 설계된 거란 말이지.”

“아, 그래야 굴러도 둥지에서 벗어나지 않을 거 아냐? 원형이면 구르자마자 멀리 벗어나잖아. 각이 진 알이면 어미 새가 품기 곤란할 거고.”    

“타원형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고안된 거란 말이지? 그걸 세우려면 생명의 원칙과 맞서는 길밖에 없지?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고정시켜서 장악하겠다는 생각이 콜럼버스의 달걀을 만든 셈이지. 발상의 전환만 볼 게 아니라, 생명을 깨서라도 자신의 구상을 달성하는 컬럼버스의 탐욕적, 반생명적 발상까지 생각해 봐.”

“서구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뒷받침하는 사고의 원형이다, 달걀 세우기의 탐욕이 콜럼버스 시대 이후 여러 가지 변형된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그 말이지?”

“잘 읽었어. 네 생각은 어때?”

“음, 생각해 보고 말할게. 앞으로는 라면 먹을 때 달걀을 넣지 말아야겠어.” 

“그거야 네 맘대로 하고, 누구나 이미 다 아는 생각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네 생각을 확대해 보라구. 하나는 착각하지 마. 어떤 대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는 건 비난할 거리를 찾는다는 것과는 달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의문을 제기하는 거라고 생각해 봐. 라면은 잊는 게 좋겠어.”

“먹은 것만으로도 잠이 오는 걸. 잘 먹었어. 나는 지금 어떤 의문에 이어 잠이 온다고 주장하고 싶어. 이 주장에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보고, 만약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봐서 문제점을 극복하면 되는 거지?”

“그래 똑똑한 우리 강아지.”

“내가 지금 원하는 건 무성의한 칭찬이 아냐. 안 자? 삼촌 올 때까지 이러고 있을 거냐고?”
“오늘은 이만. 졸리면 먼저 자.”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부자리를 편 논술이는 그 뒤로 한참을 더 제 몸을 타원형으로 만드느라 낑낑대고 있었다. 세상에는 나이를 헛먹은 강아지도 있겠지만 어느 때이든 논술이를 그 예로 삼고 싶지 않은 것이 당장의 내 심정이었다.

박정우/ 소설가. 중앙대에서 <언어와 표현>, <문학과 사회> 등을 강의했고, 요즘은 장안대에서 <소설창작과 분석>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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