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논술 시험을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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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논술 시험을 보는가?
  • 이천저널
  • 승인 2006.11.3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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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 학생을 뽑겠다는 대학의 입장과 사교육 시장 확대로 인한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교육부의 입장은 모두 “우리가 왜 논술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갚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생략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근본적인 질문에 앞서 시험으로서의 논술을 먼저 받아들인 결과이다.

이천에서 논술 따라잡기

논술 시험이 시행된 지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술에 관한 모든 준비는 학생들에게 던져져 있다.
이 이상한 현실에 처한 학생들에게 지면을 통해 일단의 수신호를 보낸다.

대학은 왜 논술 고사를 보는가?

왜 대학은 논술고사를 보는가? 이 도전적인 질문에 대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튀는 학생을 뽑기 위해서” 이 무슨 해괴한 말인가? 그러나 이 말에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다.

가까운 원인은 이렇다. ‘입시 지옥’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우리의 교육 제도는 일류고 진학 경쟁을 부추겨 과열 과외와 재수생 양산 등 많은 사회적 교육적 문제를 야기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마련된 것이 고교 평준화 제도다. 이 정책은 고교 진학을 위한 과열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를 개선하는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몇 가지 문제점도 드러났다. 그 가운데 대학이 문제 삼는 것이 교육의 하향 평준화와 교육의 획일화다.

그리고 이 평준화 정책의 연장선에서 대학에 내려진 족쇄가 본고사 금지와 기여 입학제 금지다. 여기에 고교 평준화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대학이 요구하는 고교 등급제까지 쳐서 이 세 가지가 이른바 ‘3불 정책’이다. 바로 이 정책들이 대학이 원하는 우수한 학생을 뽑는 데에 걸림돌이 되므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들고 나온 것이 바로  ‘논술 시험’이다. 

그러니까 정운찬 전 총장이 했다는 ‘튀는 학생’ 발언은 현행 입시에서 판단 기준으로 삼는 내신과 수능 시험의 낮은 변별력에 의존하지 않는 대신에 ‘논술’이라는 시험을 통해 기존 제도의 틀 안에서 어느 정도나마(대학은 끊임없이 본고사를 원하고 있다) 대학이 원하는 인재를 적극적으로 뽑고 싶다는 의지의 발로인 것이다.   

물론 먼 원인으로는 대학 자체의 문제도 있다. 대학은 산업 사회에서 정보 사회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엄청난 구조 조정의 압력을 받고 있으며, 대학마다 전문 영역에서의 경쟁력 강화와 차별화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안팎의 문제가 대입 논술 시험의 탄생 배경이다.

교육부는 논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렇다면 이 나라의 교육 정책을 주관하는 교육인적자원부는 어떤 입장인가? 정부의 최상위의 교육 정책은 교육 기회의 균등이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교 평준화 정책이 지속되어야 하고 3불 정책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슬그머니 허용된(그 배경을 알고 싶다) 대학의 논술 고사가 그만 문제가 된 것이다.

논술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논술이 사실상 본고사가 아니냐는 논란까지 일면서 가뜩이나 비대해진 사교육 시장에 새로운 불을 붙였기 때문이다. 공교육을 사수해온 정부로서는 일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논술 시험이 빈익빈 부익부의 사교육 시장을 확대시킴으로써 새로운 교육 불평등을 야기한 주범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모든 노력은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갔다. 그 대안으로 EBS 논술 강좌가 등장했고, 대학별로 맞춤 논술을 실시하겠다는 희한한 아이디어도 나왔다. 논술 시험 문제의 유형이 공표되면서 본고사 논란이 된 논술 문제에 가이드라인도 제시되었다.

준비 없는 교육부, 대안 없는 대학 

그러나 여전히 학생들은 혼란스럽다. 왜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은 과목을 대입 시험으로 치러야 하는가? 그렇게 중요하고 비중이 큰 논술을 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가? 왜 논술을 EBS 프로그램을 통해 배워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여기에 대해 교육부와 대학은 진지하게 대답해야 한다.

우선 교육부는 논술 시험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때까지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논술이 무엇인지, 왜 가르쳐야 하는지?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대학이 시험으로서의 논술을 들고 나오고, 그 부작용이 대두되자 뒤늦게 이것이 미칠 사회적 파장(고작해야 사교육비 증가다)을 줄이는 데에만 급급했다.  

대학은 또 어떤가? 논술이 3불 정책의 틈새를 파고드는 아이디어로서는 그럴 듯했는지 몰라도 시험으로서의 논술의 도입이 갖는 문제점은 부메랑이 되어 조만간 대학으로 돌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대학이 안아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시험 과정을 통과한 학생들을 대학이 어떤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 심화시키고 있는지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명약관화하다. 거의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렇다 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란스런 학생들, 난감한 교사들

한편 일선 고교 교사들은 난감하다. 일단 공교육에서 논술 교육을 실시하기로 가닥을 잡은 교육부가 제안한 그 짧은 논술 교육 연수로 대학이나 학생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실력을 쌓을 수 있을까? 기존의 전공 과목과 병행해서 논술을 가르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논술 시험을 보려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또 수준이 서로 다른 학생들을 한 자리에서 가르칠 수 있는가? 어떻게 제한된 시간에 모든 학생들을 첨삭 지도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속 시원하게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 문제는 논술이 무엇인지, 그것은 왜 가르쳐야 하는지, 또 누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생략한 데에 있다. 그 질문들을 생략한 채 시험으로서 논술을 제안하고 받아들인 결과이다. 결국 저마다 코끼리를 만지며, 기둥처럼 생겼다느니 뱀처럼 생겼다느니 하는 주장만 하고 있었던 꼴이 된 것이다. 누군가 작은 촛불 하나만 켰어도 이런 그릇된 판단이나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수도 있었건만...     

어쨌거나 그래서 대학이 요구하는 창의적이고 톡톡 튀는 학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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