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관광명소로 만들 생각은 없는가?
원적산은 이천시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주와 광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해발 635m의 천덕봉과 406m의 소당산 등을 준봉으로 거느리고 있는 관내 제일의 명산이자 진산이다.
산맥이 동서로 길게 이어져서 이천 북쪽에 높은 성을 쌓은 듯 외곽을 형성하고, 그중간에 예로부터 서울로 통하는 주요관문이 되어온 넋고개가 가로 지른다.
마치 용의 형상을 그려내듯 위풍당당한 모습이 장관이다. 더욱 경의스러운 것은, 원적산이 고려역사와 맥을 함께한 진산이란 것에 있다.
1361년 고려 31대 공민왕이 홍건적난을 피해 이곳 원적산에서 4개월간 머물렀다는 사실과 이곳 상봉에서 고려조정 종친과, 중신, 고승대덕과 함께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법회를 가졌다 하여 천덕봉이라 이름 지어 졌고 이를 옛 문헌속에서는 일명 공민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남한산성은 조선조 인조왕이 45일간의 저항 끝에 결국 청나라 적장앞에 무릎을 꿇었던 치욕의 현장인데 비해 원적산은 홍건적의 난으로 풍전등화 위기에 처해있던 고려의 맥을 지켜낸 명산이자 진산이다. 이처럼 외세 침입으로 인한 혼탁한 민심 속에서도 끈기 있는 고려인의 의지와 함께 나라를 지켜낸 정기가 서려있는 진산이기에 더욱더 자랑스럽다.
지금도 천덕봉에는 그 당시의 축성을 희미하게나마 찾아 볼수 있으며, 길이까지 옛 문헌속에 기록 되어 역사의 자료로 남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생생한 진산의 기억들이 잊혀져 가고 그 자취마저 무심한 세월 속에 묻혀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구나. 지금도 원적산은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늦었지만 이곳에 고려 역사가 숨쉬는 옛 축성을 복원하고 주변환경을 관광 명소지로 만들어 등산객들은 물론 후세에까지 험난했던 시국을 굳건히 지켜낸 고려인의 투혼과 원적산의 정기가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일깨워주는 교육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국방부에서 그토록 군부대 이전을 원하던 원적산 자락 넓은 곳에 서둘러 다양한 관광시설까지 유치한다면, 이거야 말로 지역적인 특성에 맞는 맞춤형 문화 관광지로 각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천하면 임금님표 쌀이 있고, 세계적으로 이목을 끄는 도자기와 천연온천, 그리고 고려역사를 재조명 하듯 복원된 축성과 관광 시설까지 볼수 있다면, 한마디로 요약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현실 앞에 보이는 자질 구래한 이권과 상권에 군침 흘릴게 아니라, 이렇듯 백년 대계를 내다보는 이천을 건설하기 위해 과감한 도전 의사는 없는지. 관련 공직자 몇 사람에게만 의지 할일도 아니고, 이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천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당연히 해야 할일이 아닌가 싶다.
이번 기회에 고려의 산 역사 현장을 복원하는데 이 작은 목소리가 시작의 원동력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사업의 성공을 위해, 우리 모두 다 같이 협력하고 노력할 것을 부탁드리며, 끝으로 지금까지 역사의 자료를 얻는데 협조해 주신 이천향토 사학자 한승남 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조성현 신동면 장동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