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도 봄이 아니건만, 먼 길에서
풀냄새 맡으며 비상(飛上)한다.
낯익은 걸음도 낯선 걸음도
구석구석 드나들 때
실한 논밭 하나 없는 개배미골은
밤길조차 눈감고 걸었고
기름기 하나 없는 나무들
달빛 같은 옷깃으로도 행복했다.
절망도 당당하게 허리 고추 세우면
하늘도 깨끗한 개배미골, 어릴 적부터
지친 몸 이기며
땅도 없는 땅을 시리도록 갈고
또 갈고 있는 아버지는
내 나이 열두 살
생강나무꽃이 필 때쯤
하늘에 만장(輓章)을 걸었다.
그런 아버지의 흰 머리카락이
나에게도 숨겨져 있어 개배미골에서
나도 몰래 아버지가 되고 또 아버지가 된다.
=글, 사진 : 신배섭(문학박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