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같은 시간들, 허공에
무더기무더기 쌓아 놓고
새벽부터 늦은 밤이 되도록
줄광대로 한 평생
달리고 또 달려도
너는 어디에도 없다.
메마른 햇살 등에 짊어지고
모두 떠나버린 논밭에서
문득, 장대에 오른 사슴이 되어,
수유(須臾)같은 신명으로
마지막 남은 사리(舍利)까지,
참을 수 없는 몸부림으로
뿌리째 으스러지도록 불태워도
너는 어디에도 없다.
어디에도 발 하나 묻을
논밭 비슷한 것은 없다.
* 그림 : 박호창, '배흘림 기둥'(연필 소묘)
* 시 : 신배섭(문학박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