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배섭의세상읽기
루저(Loser) 담론에 대하여
icon 신배섭 전문위원
icon 2009-11-16 10:22:38  |   icon 조회: 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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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에서는 소위‘루저’에 대한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 이는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대생이“키는 경쟁력이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불거졌다.

그러나 여대생의 루저 발언은 어쩌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루키즘(Lookism)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외모가 연애·결혼 등과 같은 사생활은 물론, 취업·승진 등 사회 생활 전반까지 좌우한다고 믿는 이른바 잘난 외모를 선호하는 사회 풍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현실에서 외모, 외형에 집착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취업을 위해 또는 결혼을 위해 성형수술을 선택하는 대다수의 젊은이가 그러하듯 상당수의 사람들이 내면의 지성이나 교양보다는 외면의 수려(秀麗)함을 더 중시하고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루저라는 말은 본래 제리 스피넬리(Jerry Spinelli)의 소설에서 온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문제아』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지 오래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징코프’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6학년이 될 때까지 자라는 동안 일어나는 내면의 변화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어렸을 때는 다소 엉뚱했지만 커가면서 점점 문제아로 부각되었다. 그러다가 이내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며 존재감 자체가 없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정작 징코프는 아빠의 일인 편지배달을 100곳이나 꿋꿋하게 전달하고, 달리기가 아무리 느리더라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뛰고, 동생을 잘 보살피는 아이이다. 또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때로는 돌아가거나 쉬었다 가야하는 인생의 의미를 알려는 주는 인물이다. 우리는 이런 주인공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사람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이처럼 루저는 절대적 개념이 아닌 상대적 개념인 것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다른 이를 루저로 지칭할 수 없고, 또한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개인의 가치관은 그 사람이 속한 사회적․ 문화적 요인과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루저(Loser)’라는 단어가 이처럼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된 것은 세계적 불황과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절망적 분위기 속에서 소위‘루저 문화’가 이미 우리 사회에 확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루저 문화란 말 그대로 패자들의 문화, 주변인들의 문화, 비주류의 문화이다. 루저담론은 승자와 패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우리 사회는 징코프처럼 겉으로는 루저의 모습이지만, 사실상 위너(Winner)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대부분이다. 따라서 상대방을 대할 때 현재적 삶의 모습보다는 그 이면의 잠재적 삶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이제는 ‘루저’가 아닌‘꿈과 희망’의 담론이 풍부한 사회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글 : 신배섭(문학박사․시인)
=그림: 박호창 화백
2009-11-16 10: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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